덕(Virtue)이란 무엇인가? 덕이란 바른 사고관을 가진 인격적 성품의 포괄적 개념이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도덕적 정신이나 마음의 양식체계를 말한다. 이러한 덕에 대해 성경은 말 할 것도 없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로마 정치가들이 많은 가르침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왜 인간들의 덕에 대한 관심들을 가졌었을까? 그것은, 인간들에게 덕이 없으면 냉소적인 인간이 되어 유기적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 관용, 용서, 인내, 지혜, 겸손, 절제, 용기 같은 것들을 덕을 이루는 내용으로 다루었다. 외적으로는 법이 필요한 것 같이, 내적으로는 인간성품으로서 덕이 필요한 것을 말해 준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그가 생각했던 덕목들을 4가지로 선정하여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하였다. 그가 강조한 덕목들은, 첫째는 지혜, 둘째는 용기, 셋째는 절제, 넷째는 정의다. 이러한 덕목들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인간존재 및 사회생활의 중요한 요소들이었는데, 플라톤은 그 중 주저없이 지혜를 최 우선순위에 두었다.
약 300년 후, 1세기, 로마의 법철학자, 웅변가, 정치가였던 시세로(Cicero/일명 키케로) 도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해 말했다. 그 역시 첫째는 지혜라 했다. 그리고, 둘째, 정의, 셋째, 용기, 넷째, 절제의 순서로 그 가치의 중요성을 말했다. 당시, 모든 정치나 철학 사상은 이미 그리스에서 로마로 넘어왔던 시기여서, 시세로의 덕목 선정 및 순서나열은 그 또한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지혜. 위 두 위인들의 정신을 체크해 보면, 동일하게 지혜를 최 우선순위에 두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지혜를 최우선순위에 둔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어야 할 근본적인 성품이 지혜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들이 지혜를 첫 순위에 둔 것은 그 들 자신이 지혜를 논하는 철학자로서, 또 정치 사상가로서 그 시대에 필요한, 오늘 시대의 용어로는 시대정신 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혜는 이들 보다 훨씬 앞선 주전 900년 경, 이스라엘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추구하였던 덕목이었다. 아버지 다윗왕이 한 국가를 통치하면서 숫한 고난과 역경에 처해있는 것을 보면서, 또 극복해 가는 것을 보면서 지혜가 중요한 기능적 역할을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통치행위에는 돈이나 그 어떤 것 보다는 지혜가 가장 필요한 것임을 알고 그것을 하나님께 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덕, 또는 덕목들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21세기에도 지혜가 필요한 시대임은 말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각 종 사상이나 철학, 학문이 발전한 가운데서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려면 지성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교육하여 내어 보낼 때도 “뱀같이 지혜로울 것”을 강조하셨다. 어떤 사람은 용기를 1순위에 두기도 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일이다. 용감성에 지혜가 없으면 동물적 행위가 나오기 쉽다. 오죽하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러므로, 지혜로운 인간, 즉 먼저 지성적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의. 의란 바름을 말하는 것이다. 의의 본래의 뜻은 “곧음” “바름” 을 말한다. 정의는 지혜를 통해 그 성품을 인지 할 수 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무엇이 정의인지 알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한다. 의는 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정의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은 지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지혜의 성품을 가진 자를 지성인이라 부르며, 지성인은 바르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셋째 용기. 또한, 21세기, 지금 당장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긴급히 요구되는 덕은 용기라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나 자본의 발전으로 신성이 모독되고, 인간성품은 비인간화 된지 이미 오래다. 이러한 비 인간화, 비 신성을 성경본래의 교리나 정신으로 돌려 놓을 수 있는 자세, 즉 용기가 필요하다 볼 수 있다. 이성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발전한 상황이라 “모르기 때문에 잘못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 알고는 있지만, 개선하거나 실행 할 용기가 없어 정상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윗왕은 작은 돌하나 들고 적군에 나가 싸울 수 있었던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용기로 이스라엘은 패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지 않았는가. 그만한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한 국가의 왕이 될 수 있었다. 마틴 루터는 교황의 어마어마한 권력에 맞서는 용기가 있었기에 개혁을 단행한 역사를 이루어 냈다. 이런 경우 모두 두려움과 싸우고자 하는 용기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업적은 역사에 기록될 수 없었을 것이다.
넷째, 영성이다. 즉 영적 힘(Spiritual Power)이다. 영적 힘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는 엘리야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당시, 부정부패가 심했을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로 온 국가가 하나님께 반역했을때, 금식하며 얻은 영적 힘 가지고 나아가 갈멜산에서 우상숭배 지도자 850:1로 싸워 이길 수 있었다. 그들과 싸우기 위해 영적 힘으로 용기백배 충만하여 이스라엘의 야훼 하나님 신앙을 다시 회복시켯던 것 역사에 잘 기록되어 있다(열왕기상 18장 이하). 영성, 즉 영적 힘은 용기의 근원이 되므로, 기독교 교회 지도자는 반듯이 영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위기 때나 혼란스러움에 처해 있을 때, 어떤 시대정신을 세워 역사를 유지시켜 나 갈 수 있었는가에 대한 방법들을 위인들의 사고관을 통해 살펴 보았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도 이러한 책임적 환경속에 살고 있다. 특히, 기독교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크리스챤 지도자라면 이 네 덕의 요소를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먼저,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며 , 둘째, 정의의 힘인 정당성을 축적, 동원해야 하며, 셋째,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더우기 크리스챤들은 영적 힘을 항상 비축해 두어 용기있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덕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비굴한 존재가 되어 미움을 받거나, 비난을 받거나, 아니면 나약한 인간이 되어 비웃음을 사게 된다.
“그대는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라”(출애굽기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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