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안락사 캡슐 '사르코'(Sarco)의 첫 사용자로 예정됐던 미국인 여성이 부적합 판정을 받은 후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안락사를 둘러싼 윤리적, 법적 논란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30일(현지시각) 55세의 미국인 여성이 스위스에서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이 여성은 당초 7월 중 안락사 캡슐 사르코의 첫 번째 사용자가 될 예정이었다.
사르코 제작사인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7월 중순 실종된 이후 현재까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앞서 스위스 현지 매체는 7월 초 사르코의 첫 사용이 예정되어 있으며, 첫 번째 사용자가 이미 스위스로 여행을 떠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르코를 발명한 필립 니치케 박사는 7월 17일로 예정되어 있던 안락사가 취소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여성의 정신 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판단돼 캡슐 사용을 중단했다"며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해당 여성은 안락사가 아니라 정신 건강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니치케 박사는 "지난 몇 주 동안 여성의 상태를 관찰하고 진술을 통해 판단한 결과 이 여성이 심각한 정신 장애를 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그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7월 30일 오전 취리히주 경찰이 해당 여성의 실종 신고를 접수하면서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당초 사르코 사용자의 개인 정보는 비공개로 할 예정이었으나, 실종 사건으로 인해 기본적인 정보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사르코는 캡슐 내부의 산소를 질소로 대체하여 산소 부족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 장치다. 이용자가 캡슐 내부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면 공기 중 산소 농도가 21%에서 0.05%로 급격히 감소하여 수 초 내에 사망하게 된다.
사르코 사용을 위해서는 사전 평가를 통과해야 하며, 캡슐 내부에서 세 가지 질문에 구두로 답해야 한다.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하면 최종적으로 "사망에 이르고 싶다면 이 버튼을 누르세요"라는 안내 음성이 나온다.
그러나 스위스 내에서도 사르코의 사용을 둘러싼 법적, 윤리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르코 제작사 측은 캡슐 사용에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위스 형법 제115조에 따르면 '이기적인 동기'로 타인의 자살을 돕거나 유도한 경우에만 처벌하기 때문이다.
반면 스위스 검찰은 사르코 사용과 관련해 기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샤프하우젠주의 피터 스티처 검사는 "자기 이익을 위해 자살을 유도하고 방조한 니치케 박사에 대해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검찰은 "자살 방법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으며, 죽음의 과정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는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락사의 윤리성과 법적 문제, 그리고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안락사 적용 여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