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교회는 예배에 목숨을 걸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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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여간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했던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났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특히 교회는 당시 방역 당국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예배드렸다는 이유만으로 고발돼 처벌받은 것에 대한 법적 소송이 이어지면서 갈등과 논란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동안 상당수의 교회들이 지자체로부터 방역 위반으로 고발돼 교회 폐쇄 등의 처벌을 받았다. 방역법 위반으로 담임목사가 처벌받은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런 교회와 목회자 일부가 처벌의 부당성을 정식 소송으로 제기하고 있다. 행정당국이 코로나 시국을 빌미로 국민의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했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이 같은 코로나19 방역법 위반 관련 소송에서 사법당국이 서로 상이한 판결을 내리고 있는 점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광주안디옥교회가 제기한 소송에서 행정당국의 손을 들어줬고,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서울에스라교회에 ‘선고유예’를 판결함으로써 사실상 교회 측의 손을 들어줬다.

광주안디옥교회와 서울에스라교회 사례는 코로나19 방역조치 위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점이라면 한 교회는 행정당국의 ‘종교의 자유’ 침해에 대한 소송인 반면에 다른 교회의 경우는 행정당국이 교회 담임목사가 감염예방법 위반했다며 형사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이 다르다.

결과만 놓고 보면 두 법원의 판결 내용은 천지 차이다. 하나는 ‘종교의 자유’ 침해 여부를, 다른 하나는 대면예배 시행에 대한 위반 여부를 따지는 게 본질이다. 물론 이 두 판결을 같은 기준으로 놓고 판단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 위반이라는 큰 틀 안에서 볼 때 큰 차이가 없는 점에서 당국의 무분별한 고발과 처벌에 대한 법적 논란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직도 후유 병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갖가지 변이 바이러스가 출몰하는 데도 당국이나 국민 모두 코로나19를 더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2~3년 전만 해도 지금의 상황과는 판이했다. 손씻기 마스크쓰기는 기본이고 카페나 식당도 마음대로 가지 못했다. 어디서 누군가에게서 감염될지 모르는 불안 심리가 일상을 송두리째 지배한 시간이었다.

그중 가장 모진 타격이 교회에 가해졌다. 교회는 다중집합시설이란 이유만으로 엄격한 방역 통제를 받았다. 식당에선 마스크를 벗고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했던 반면 교회는 마스크를 쓰고 긴 장의자에 1~2미터 간격을 두고 앉는 등 철저한 거리두기를 하고도 예배를 금지당하는 일이 번번했다. 교회에서 확진자가 한 명만 나오면 모든 교회가 연대 책임을 지고 단체로 기합을 받는 식이었다.

교회가 유독 과도한 통제의 대상이 됐던 원인 중에 한국교회가 정부의 비대면 예배 요구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2020년 8월 청와대에서 한국교회 지도자 초청 간담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부 교회에서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한 사례를 언급하며 “방역은 신앙의 영역이 아닌 과학의 영역이다. 바이러스는 종교나 신앙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후 한국교회는 비대면예배 파와 대면예배 파로 갈렸다. 많은 교회가 코로나19 확산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비대면예배에 동참했지만, 정부의 예배 통제에 따를 수 없다며 대면예배를 고수하겠다는 교회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갈등이 팬데믹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 어려운 게 오늘 한국교회의 분위기다.

문 전 대통령이 당시 교계 지도자들에게 했던 “방역은 신앙의 영역이 아닌 과학의 영역”이란 말은 한국교회에 비대면예배와 대면예배 사이에 메우기 힘든 골과 간격을 만들었다. 그때 교계 지도자들이 예배는 ‘과학의 영역’을 초월한 ‘하나님의 영역’임을 당당히 외쳤더라면 정치인들과 언론이 ‘좌표찍기’에 나서 공격을 했겠지만, 교회끼리 갈등하고 반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정부가 국민적 두려움과 공포를 정치 수단화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보수 기독교계의 광화문 집회는 버스로 겹겹이 막아 통제하고 대규모 민노총집회는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만 봐도 코로나19 방역이 ‘과학 영역’이 아니라 ‘정치 영역’이었음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코로나19는 감염자에 대한 집계가 멈춰졌을 뿐, 아직도 우리 생활 가운데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대하는 두려움이 약화됐을 뿐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교회가 코로나19 이전의 예배 인원을 회복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는 점이다. 그 원인이 비대면예배에서 비롯된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동기를 제공한 것만은 분명하다. 언제 또다시 어떤 이름의 감염병이 우리 사회를 덮칠 때 한국교회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교회 존재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들의 공동체다. 예배가 빠지면 흔한 사교모임이 되고 만다.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만 예배라는 근본주의적 태도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과연 우리는 예배에 목숨을 걸 만큼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