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독교 신성 모독이 올림픽 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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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이 개막식에서부터 온갖 구설수에 휩싸였다. 근대 올림픽 시작 이래 처음 경기장이 아닌 야외에서 개회식을 진행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센강에서 배를 타고 입장하는 우리 선수단을 “북한”으로 호칭하는 실수를 저지르더니 개막식 공연에 트렌스젠더를 등장시켜 동성애와 젠더주의를 대놓고 찬양함으로써 반 기독교 조류에 침몰해 가는 프랑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 26일 열린 파리올림픽 개회식에서 장내 아나운서는 한국 선수단을 ‘République populaire démocratique de Corée’(북한)이라고 소개했다. 이어진 영어 소개 역시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북한)였다. 그런데 한참 뒤에 입장한 북한 선수단도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소개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대회 조직위가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으나 북한 국가명을 두 번씩이나 호명한 건 의도적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파리올림픽의 오점은 뒤이은 개막식 공연에서 여장 남자(드래그 퀸)와 트랜스 젠더 모델을 등장시켜 패러디 형식으로 재현한 ‘최후의 만찬’에서 보여준 충격적인 광경에 비하면 미미한 서막에 불과했다.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 군병에게 체포돼 십자가에 달리기 전 마지막으로 열두 제자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을 그린 세계적인 명화다. 기독교 메시지가 함축된 이런 명화를 동성애자와 트렌스젠더를 동원해 조롱하고 희화화한 건 기독교에 대한 신성 모독이라 해도 달리 할 말이 없다.

프랑스의 공연 기획자는 미국의 유명 동성애자 가수인 레이디 가가를 무대 위에 세웠다. 그것으론 모자라 예수님의 자리에 동성애자를 앉히는 등의 반기독교적인 포퍼먼스를 연출했다. 그 의도는 프랑스가 가진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우월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시청자들의 눈에 비친 프랑스는 동성애와 젠더주의에 매몰된 채 침몰해 가는 난파선의 최후의 모습이 연상됐을 뿐이다.

전 세계가 경악한 반 기독교 공연에 모든 기독교 공동체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영국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들은 ‘최후의 만찬’ 묘사를 “음란”이라 규정하고 “기독교에 대한 공개적인 경멸의 표현”에 대한 주최 측의 사과를 요구했다. 개최국인 프랑스 주교회는 “기독교를 비웃고 조롱하는 장면이 포함된 점을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며 “특정 장면의 과잉과 도발로 인해 상처받은 대륙 전역의 모든 기독교인을 생각한다”라고 했다.

국내 연합기관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한교총은 29일 자 논평에서 “파리올림픽 개회식이 기독교에 큰 수치를 안겼다”면서 “스스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무도하게 공개적으로 모욕함으로써 올림픽의 미래를 어둡게 했다”고 비판했다. 한교연은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기독교를 조롱하고 희화화하다 못해 동성애자들을 이용해 능멸하고 짓밟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고자 하는 이 세상에서 적그리스도에 사로잡혀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한기총도 30일자 논평에서 “파리올림픽 개회식을 자유와 관용의 표현이 아닌 폭력으로 규정하며, 이 같은 폭거에 단호히 맞서서 진정한 관용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한다”고 했다.

파리올림픽 개막식이 낳은 이런 논란은 한 번의 해프닝으로 덮고 넘길 수준을 넘은 것으로 판단된다. 단순 실수라면 사과를 받고 넘길 수 있겠지만 기독교의 신성을 모독하는 내용의 퍼포먼스는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기독교를 조롱하려는 의도에서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연출이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근대 올림픽은 1896년 4월에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출발했다. 이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사람이 바로 프랑스인 쿠베르탱 남작이다. 그때 그 올림픽 정신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으나 전 세계인의 스포츠제전을 성 소수자와 젠더주의자들의 잔치로 전락시킨 건 근대 올림픽 창시 이후 최악의 오명으로 기록될 중대 사건이다.

혹자는 파리올림픽에서 기독교를 폄하하고 동성애를 찬양하는 각종 장치가 동원된 것을 두고 기독교가 동네북 신세가 됐음을 한탄한다. 불법 이민으로 이미 이슬람에 지배당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이 후환이 두려워 이슬람을 피해 동성애에 반대하는 기독교를 희생제물로 삼았다는 논리다.

하지만 1793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목을 베고 난 후 프랑스 전역이 혼돈과 파괴, 마비 상태에 빠졌던 그때와 오늘 프랑스 사회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오늘의 프랑스가 쟝 깔뱅의 기독교 개혁 정신을 버리고 동성애와 젠더에 미혹돼 저지르고 있는 죄악이 과거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왕정시대의 종말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프랑스 정부와 국민이 대답할 차례다.

동성애를 다양성이라고 부르는 사회 현상엔 하나님이 성경에서 저질러선 안 된다고 명시한 가증한 죄악을 어떻게든 숨기고 변명하려는 인간의 죄성이 숨어 있다. 죄악이 양심과 충돌하면 돌이켜야 하는데 더 깊은 죄악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게 반기독교 정서의 특징이다.

하지만 동성애와 젠더주의가 왕성한 사회일수록 그 끝이 보인다. 죄악이 가득 찬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 임한다고 마음껏 하나님을 조롱하다간 소돔과 고모라처럼 순식간에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성경이 주는 교훈이다. 문화의 도시, 패션의 도시를 자랑하는 프랑스 파리가 이제라도 하나님의 경고를 귀담아듣고 음란한 죄악에서 돌이키기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