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NCCK와 인권센터의 선 긋기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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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NCCK 인권센터’ 명칭 변경을 위한 대화위원회 구성을 결의했다. 동성애를 옹호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등의 문제로 회원 교단에서 탈퇴 여론이 비등하자 NCCK와 인권센터는 별개라는 공식적인 선 긋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NCCK는 지난 25일 열린 72회기 3차 정기실행위원회에서 ‘한국교회 인권선교를 위한 교회협-인권센터 대화위원회(가칭)’ 구성의 건을 통과시켰다. NCCK와 NCCK 인권센터가 대화위원회를 구성하게 된 건 NCCK 주축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에서 일고 있는 NCCK 탈퇴 여론을 잠재우는데 1차 목적이 있어 보인다. 두 교단 총회에서 동성애를 옹호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등 한국교회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NCCK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후 시간이 갈수록 압력이 거세지는 분위기 때문이다.

NCCK는 그동안 NCCK 인권센터는 별개라는 입장을 누누이 밝혀왔다. NCCK의 공식 입장은 실행위 등의 결의를 거치는 만큼 NCCK 인권센터가 자체적으로 발표한 각종 성명서와 NCCK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NCCK 인권센터가 NCCK 유관 조직이고 명칭 앞에 ‘NCCK’가 붙은 만큼 NCCK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날 실행위에서 결의된 내용으로 볼 때 앞으로 NCCK와 NCCK 인권센터 각 8~10명씩 동수로 파송한 위원들로 대화위원회가 구성되고 이들이 조만간 모여 NCCK와 NCCK 인권센터의 관계성과 방향성을 놓고 어떤 식으로든 타협점을 찾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화위가 인권센터 앞에 붙은 ‘NCCK’라는 이름을 빼거나 다른 이름으로 바꾸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하는 만큼 다른 논의가 이뤄질 여지는 별로 없다. 혹시 방향성에 대해 논의한다 해도 서로 구속력이 없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시점에서 드는 한 가지 의구심은 NCCK와 NCCK 인권센터가 과연 각자도생(各自圖生)할 수 있는 사이인가 하는 점이다. NCCK 정관 제34조에 NCCK 유관기관으로 음영위원회, 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 NCCK 인권센터,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을 둔다고 돼 있다. 이들 기관은 각기 NCCK와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그렇지만 다른 기관 모두 고유의 독립적인 명칭이 있는 데 반해 인권센터만 유독 앞에 NCCK가 붙어있다는 건 둘 사이에 보다 밀접한 관계성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이런 관계성으로 인해 대화위원회가 구성되기 전부터 명칭에서 ‘NCCK’가 빠져도 NCCK 인권센터의 역사와 전통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아직 뭐라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만약 NCCK와 NCCK 인권센터가 일단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식이라면 겉과 속이 다른 미봉책이 더 큰 화를 부르게 될 수도 있다.

NCCK가 NCCK 인권센터에 NCCK 명칭을 빼는 작업에 착수하게 된 건 이대로 계속 같이 가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회원 교단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제 한계점에 다다라 더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결론이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홍정 총무가 중도 사퇴할 정도로 NCCK 자체 내홍이 깊었던 사안에 대해 이제 겨우 명칭 변경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늦은 감이 없지 않다.

NCCK의 입장에선 인권센터 앞에 붙은 ‘NCCK’ 명칭만 빼면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는 인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안일한 문제의식이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NCCK가 인권센터 앞에 ‘NCCK’가 붙어서 부담이니 이를 제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판단했더라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NCCK 인권센터는 지난 2020년 6월 제21대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자 환영 입장을 밝히며 법안 발의 국회의원들을 향한 지지와 연대를 표했다. 문제는 이들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한국교회를 향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또는 보수 개신교계로 지칭하며 “성 소수자와 지지자들에 대한 혐오와 낙인, 정죄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신앙인들을 탄압하고 양심적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갈라치기식 공격을 한 점이다. 또 최근 퀴어축제 축복식에 참여해 기감 교단에서 출교 처분을 받은 이동환 씨를 두둔하며 해당 교단과 동성애를 반대하는 한국교회를 ‘혐오 광풍’이라고 지칭해 물의를 빚었다.

사회적으로 예민한 이슈에 대해 어떤 시각을 나타내는 건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 온도 차가 다를 수 있다. 찬성 또는 반대, 지지하거나 거부하는 것도 민주사회 건강의 척도다. 하지만 나와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고 이를 혐오와 낙인, 정죄로 규정해 공격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의미다. 이런 극단적인 공격성이 계속되는 한 한국교회가 이를 건강한 비판, 즉 다양한 목소리의 하나로 수용하기란 어렵다.

이런 NCCK 인권센터의 편향적 행보로 곤란을 겪어온 NCCK의 시각에선 명칭에 ‘NCCK’를 그대로 두느냐 빼느냐가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적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해당 교단과 한국교회의 시각에선 ‘NCCK’라는 명칭이 붙어있느냐 없느냐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만약 인권센터가 NCCK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독립성만 강화하는 형태가 된다면 한국교회에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회원 교단을 비롯해 한국교회가 NCCK에 바라는 건 태생적인 진보적 성향을 보수화하라는 게 아닐 것이다. 개신교가 가톨릭과 다른 점도 다양한 색채와 목소리를 소화해 하나로 승화로 시키는 장점에 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색깔은 모두 복음의 바탕 위에 있어야 한다. 성경의 진리를 거스르고 인권과 젠더의 가치를 내세우는 인본주의 물결에 경도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공존할 수 없다. NCCK는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