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본질적으로 성자 예수님을 부각시키고 우리의 눈과 마음과 애정을 성자 예수님께 고정시키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알리고 그분의 말씀을 이해시키고, 그리고 그분을 높이는 것, 이것이 성령의 가장 중요한 일이자 최고의 기쁨이다. 비유컨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성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상자 안의 내용물이라면 성령은 그것을 언박싱unboxing하는 즐겁고도 힘찬 손이다. 성령이 손을 놀리지 않으시면 예수님 만나는 기쁨은 현실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만날 때, 한 번쯤은 반드시 이름을 가지고 만나게 돼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이름을 물으신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물어보신다. 걸맞게 살고 있다면 그 이름을 더욱 격려해 주신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오늘 베드로처럼 새 이름을 주신다. 새로운 이름, 다시 말해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꿈’을 주신다. 사실 이 꿈은 본래 하나님의 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존재를 만세 전에 계획하셨을 때 ‘이런 존재로서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기대하셨던, 바로 그 꿈이다.
김영배 – 이토록 만날만한 예수
우리는 초대교회 가운데서 믿음의 소문이 났던 교회,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현재 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카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지역입니다. 현재 인구 32만 명쯤 되며, 아테네 다음으로 큰 그리스의 2대 도시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8절을 보면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라고 바울은 칭찬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때 빌립보 교회 다음으로 세운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7장 1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와서 불과 3주밖에는 복음 전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워낙에 거세게 들고 일어나 핍박했기 때문에 바울은 부득불 베뢰아로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스치듯이 지나치며 복음을 흩뿌린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에 교회가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을 넘어서 각처에 소문이 날 정도가 되었다고 바울은 칭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웅 –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영적 전쟁의 결론과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마귀를 쫓아내고 축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마귀를 통해 내 고집과 아집의 자아를 깨뜨리는 십자가로 나아가게 하셔서 죄로 어그러진 옛사람을 내려놓고 부활의 새생명을 덧입는 싸움이 바로 영적 전쟁이다. 사단의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나의 믿음을 빼앗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내면의 구원이 확장되지 못한 나의 성품과 행위에서 나 자신을 보게 하고 낙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분리시켜 현실의 중압감으로 우리를 좌절케 하여 믿음에서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이다.
진유식 – 거룩한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