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에베소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 도시에 있던 에베소 교회는 이미 어느 정도 병든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과 성도 간에 나누던 뜨거운 사랑은 어느새 그 열기를 잃어버리고 식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적이 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핍박을 받거나 환란을 당해 쫓기는 일도 많이 없었습니다. 요한일서 안에 그런 낌새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적은 박해가 아니라 유혹이었습니다. 속에서 무서운 유혹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예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는 유혹, 영의 소욕보다 육신의 정욕을 따르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되니, 성경 말씀이 요구하는 거룩한 생활, 윤리 규범 같은 것이 점점 번거롭고 싫증이 났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사랑으로 행하라, 계명을 지켜라, 자기를 깨끗이 하라 등등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살도록 하신 이런 거룩한 규범이 이제는 입에 단 말씀이 아니라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옥한흠 – 하나님 사랑의 승리
누가 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실하며 열정이 남달라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좌절을 만나는 힘든 인생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다가 젊은 나이에 죽는다고 하자. 그런 사람 앞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보다 내가 잘된 것은 내가 뛰어나고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차마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루이스는 사랑으로 인한 고통과 행복이 한 세트라는 것을 조이와의 관계를 통해 절절하게 경험했다. 그로 인한 고통은 컸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다들 루이스처럼 “그대로 인한 근심이 다른 모든 이득보다 더 소중합니다”라고 고백할 것이다. 그것은 사랑에 따라오는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비록 앞날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비로소 누릴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고백이었다.
홍종락 – C.S. 루이스의 인생 책방
다카시고마루는 화물 전용선이지만 약간의 뱃삯을 내면 피와 살을 가진 인간도 운반해준다. 어제 오후, 고배항 제3돌제에서 서서히 멀어진 다카사고마루는 날씨의 축복을 받으며 파도가 낮고 부드러운 세토우치 서쪽으로 항해하고 있었따. 이런 다카시고마루 안, 누추한 철 냄새로 가득한 선창 한 구석에는 몸집이 작은 젊은이가 두꺼운 배낭을 임시베개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저리 대담하게 자는 모습을 호의적이지 않은 곁눈으로 힐끔 보면서 “이 젊은이 잘도 이렇게 잘 수 있군. 느긋한 사람이야”라고 일곱, 여덞 명의 동승자 무리 중앙에서 심하게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유대하 – 조선지도자 오다 나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