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재평가 흐름 지속·확장 위해 기념관 건립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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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현충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 거행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 진행 사진. ©장요한 기자

(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김남수, 이하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개최됐다. 행사는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가 후원했다.

주요 인사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장요한 기자

이날 추모식은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시민 등 약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상시청, 추모 식사(式辭), 추모사, 추모의 노래, 헌화·분향 및 유족인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손현보 목사가 추모식사를 전하고 있다. ©장요한 기자

◆ 자유민주주의 뿌리,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문무일 사무총장의 사회로, 이규학 감독(이승만전집발간위원장)의 추모기도에 이어 추모식사를 손현보 목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부회장, 세계로교회 담임)가 전했다. 손 목사는 “자유민주주의 뿌리가 되어주신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서거 59주기를 추모하며 이 자리에 모였다”며 “1965년 7월 19일 그분이 떠난 지 59년의 세월이 지났다. 대통령께서는 일제강점기 가장 어둡고 암울한 시기에 민족의 독립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꿈꾸셨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온몸을 바쳐 헌신하셨다. 그 담대하고 위대한 꿈은 역사 가운데 이루어졌고, 드디어 이 땅에 자유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했다.

손 목사는 “국가·도시마다 각각 공과는 있지만 그들의 동상을 세워 교육의 장으로 삼는다. 어찌 우리나라만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동상 하나를 세우지 못하는가”라며 “이 분은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선물했으며,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던 위대한 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좌우의 극심한 대립 가운데 있는 대한민국을 하나로 통합하여 위대한 국가를 건국했다”고 했다.

아울러 “그분은 친미도 친일도 반미도 반일도 아니었다. 오직 국민이 원하고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바로 그 길을 갔다”며 “오늘 그분이 남기신 유산은 대한민국의 밑바탕이 되었고, 우리는 그 유산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분의 헌신과 희생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 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이 추모사를 전하고 있다. ©장요한 기자

◆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 토대 마련 위해 헌신하신 분

이어서 추모사 순서가 진행됐다. 먼저,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강한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신 분”이라며 “정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신명을 바쳐 희생·헌신하신 모든 분들이 제대로 예우 받을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김황식 이사장이 추모사를 전하고 있다. ©장요한 기자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승만 정신 본받아 시대적 과업 완수하자

이어 추모사를 전한 김황식 이사장(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은 “오늘 우리는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대한민국의 초석을 세우신 이승만 대통령의 서거 59주기를 맞았다. 불굴의 독립운동가요 국가의 기틀을 세운 창업가의 위대한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빛나는 건국의 공적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과(過)만 크게 부각된 채 마땅이 기려야 할 업적이 폄훼되어 왔다. 그의 업적과 정신을 제대로 기념할 공식적인 기념관조차 없다는 현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더 늦기 전에 이제는, 이승만 대통령을 제자리로 모셔야 한다. 최근 사회 곳곳에서 조성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의 흐름이 지속성과 확장성을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식적이 기념관 건립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어 “다행히 이번 尹 정부에서 기념관 건립에 관심을 갖고 이 일을 시작하여 저희 기념재단에서 최선을 다해 추진하고 있다”며 “여러분의 그간의 노고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길은, 모든 단체가 단결하여 국격에 알맞은 기념관을 건립하는 일”이라고 했다.

더불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을 본받아 그를 존경하는 우리 모두가 하나로 뭉쳐, 기념관 건립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자”고 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전 장관이 추모사를 전하고 있다. ©장요한 기자

◆ 이승만 대통령의 가치, 재조명되길

다음으로 추모사를 전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전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은 왕의 나라를 국민에게 돌려주려 했던 봉건주의에 대항했던 공회주의자이자 항일운동의 선구자로 외교로써 독립의 의지를 세계만방에 천명했던 독립운동가의 삶을 사셨다”며 “또한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자유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 “정치적 결정과 행적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존재하지만, 봉건주의·제국주의·공산주의에 맞섰던 이승만 대통령의 신념은 의심해선 안 된다”며 “그 토대 위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고도화, 경제발전을 통한 경제적 자유를 이뤄냈고, 명실상부한 일류 선진국으로 발돋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전 장관은 “자유대한민국이 지향해 왔던 가치, 그리고 그 시작의 토대에는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의 손길이 분명히 묻어 있다”며 “오늘을 계기 삼아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자유대한민국에 담아냈던 그 위대한 가치가 재조명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현승일 전 해공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장이 추모사를 전하고 있다. ©장요한 기자

◆ 이승만의 자유는 기독교적인 자유

마지막으로 추모사를 전한 현승일 전 해공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장은 “그의 자유민주주의는 기독교에 기초를 두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다. 기독교는 인간은 평등하게 세상에 태어났으며, 각자는 자신의 자유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며 “이 박사는 모든 평등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할 때 세상과 나라와 개인이 부강해진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이승만의 자유는 ‘너희는 내 안에 거하며 진리를 알게 되고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는 기독교적인 자유”라며 “즉 허위와 진리를 구분하여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여 정의를 사랑하는 자유”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기독교는 십자가의 고통을 부활의 전제로 간주하는 비장한 종교다. 이 대통령의 생애를 볼 때 그는 나라의 독립과 겨레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인 분이었다. 그의 사고와 의지와 행동은 비장하게 연마된 것이며, 진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며 “그러므로 우리가 답답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에게 물어야 한다. 그의 행적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 생각한다. 그로부터 해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이 대통령을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손자 이병구 이화장 대표(왼쪽)와 이 대통령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오른쪽). ©장요한 기자
헌화 및 분향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 사진. ©장요한 기자

이어서 정운찬 상임고문(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의 ‘한민상호방위조약 담화문 낭독, 「헌시」 작가 최영옥의 며느리 김수경 여사의 헌시 낭송, 배재아펜젤러중창단의 특별찬송, 백석대 임청화 교수의 추모의 노래, 유가족·기념사업회 임원 및 내빈의 헌화 및 분향, 현충원 의장대의 조총 발사 및 묵념, 이병구 대표(이화장)의 유족인사, 광고, 폐회 선언 순서가 진행됐다.

이병구 대표가 유족인사를 전하고 있다. ©장요한 기자

유족인사를 전한 이병구 대표는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지금은 대한민국이 위기라고 한다. 또, 세계가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께서 마주하셨던 그 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되찾고,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주신 불굴의 의지를 본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행사는 이후 현충원 묘소 참배 순서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유가족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장요한 기자

한편, 1875년 황해도 출생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896년 서울에서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하고, 협성회보(協成會報)와 매일신문(每日新聞)을 발행하여 주필로 활동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며,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을 폭로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구미위원장으로 미국 대통령과 국무성을 상대로 임시정부 승인을 요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정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공적을 기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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