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령 목사 “부교역자의 복지를 생각하게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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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요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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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S ‘내가 매일 기쁘게’ 출연해 간증
김천 더세움교회 정통령 목사. ©CTS 내가 매일 기쁘게 영상 캡처

김천 더세움교회 정통령 목사가 최근 CTS ‘내가 매일 기쁘게’에 출연해 간증했다. 정 목사는 특별한 자신의 이름에 대해 “저희 할아버지는 군인 출신으로, 삼형제를 다 정치인으로 기르기 위해 법대를 보내셨는데 다들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 그래서 저희 때에 정치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 이름을 ‘통령’, 제 동생의 이름을 ‘총령’으로 지었지만, 현재 저는 목회를, 저희 동생은 금융권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더세움교회에 대해 “저희 교회에 특징이라면 교역자 복지가 좋다”며 “단적인 예로 교육전도사 즉, 신대원에 다니면서 주말에 사역을 하시는 분들의 경우 1년 연봉이 등록금을 포함하면 3100만 원 정도다. 사역자들이 열악하다보니 현실 수준으로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성도들이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그리고 교역자들이 충분히 쉬어야 하기에 풀타임 사역자의 경우 1년에 2주는 유급으로 안식월, 교회에서 안식월 비용을 지원한다”고 했다.

또한 “여름휴가는 8일이다. 목회자는 설교를 주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서 주일을 포함한 8일 휴가를 준다. 그리고 월차도 15번 정도다. 그래서 최대한 교역자들이 쉴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성도들 중 안 좋은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저희 교회 한 장로님이 ‘교역자가 행복해야 성도들도 행복하다’라는 말을 했다. 부교역자들은 행복한 삶과 경험에서 오는 유익한 설교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부 교역자를 생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 “부 교역자 중 한 분이 코로나 시기 자살시도를 했었다. 부 교역자 안에 부담감과 어려움이 찾아왔던 것이다. 그 부 교역자는 병원으로 이송되게 되었다”며 “코로나 시기 저희 교회는 두 배 가량 성장을 이루었는데, 부흥에 찬물을 끼얹거나 성도들에게 안 좋은 영향력을 미칠 것 같다는 교회 성장에 대한 염려와 목회자로서의 당위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 항상 성도들에게 ‘누군가에게 기도응답이 되어주자’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기도했다고만 말하지 말고, 기도하는 가운데 때론 나를 사용하셔서 저분의 기도응답이 되게 하실 수 있는 것”이라며 “‘만약 이 상황에 부 교역자의 지인이라면 과연 어떻게 해 주길 원할까? 이 어려움을 같이 감당해주길 원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일차적으로 생각했던 걱정과 염려가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정 목사는 “성도들에게 부 교역자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유급으로 무기한 휴가를 주기로 결정을 했고, 성도들 모두가 허락을 해주셨다”며 “이 일을 통해 리더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며, 말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내가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한 사람을 품는다는 것은 그의 모든 존재를 짊어지는 것”이라며 “부 교역자를 감싸는 교회의 모습에 성도들은 위로를 느꼈다. 그리고 저희 교회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라는 가치로, 느리게 가더라도 같이 가는 동역자의 마인드를 중요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도사 시절, 말씀을 전하는 제가 정작 은혜를 못 받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은 ‘너 교만하다’였다”며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은 ‘너는 이 아이들을 한 수 가르칠 대상으로 보고 있어’였다. 정작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이 공동체엔 내가 필요하고, 내가 다 해야 하며, 나 한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하나님이 보시기엔 교만인 것이다. 아이들은 울고 있던 저에게 다가와 기도를 해주었다”고 했다.

더불어 “아이들은 동역자이지 내가 가르칠 대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뒤로 동역자라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목회자의 꿈은 아버지의 목회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겼다는 정 목사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가정과 밖에서의 모습이 다른 것에서 오는 괴리감이 있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제가 커서 회복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저는 우울증을 앓았는데, 신학대를 가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산기도를 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나를 왜 만드셨냐’며 불만어린 목소리로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어떡하지’하는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이어 “이후에도 산기도를 했다. 두려운 마음에 깊이 기도를 했는데, 그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아버지를 용서하라’라는 것이었다”며 “문자를 보낼 용기를 주셔서 쉽지 않았지만 ‘아버지 사랑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즉시 아버지께서 답장을 하시기로 ‘아들아, 사랑한다 많이 힘들지? 우리 조금만 더 견디자’였다. 사실 아버지도 힘들었던 것이다. 마음의 실타래는 풀렸지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완전히 개선되진 않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했다.

정 목사는 김천 사역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학창시절 꿈이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지방에서 힘들게 목회하시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다”며 “20대 중반에 교육자 의무 참석으로 한 컨퍼런스를 참석하게 되었다. 제일 끝에 앉아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시기로 교회가 세워지고, 그 교회가 도시를 바꿔가는 환상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 한 집회에서 찬양을 하다가 하나님께서 그 환상을 보여 주셨다. 그때 주님이 부르시는 곳에 가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30세가 되던 때 김천에 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련회를 가게 되었고, 순박하고 예쁜 아이들의 모습에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김천에서 교회개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교회개척 이후 어려움이 많았다. 이 지역이 연고지가 아니다보니 환대받지를 못했다. 캠퍼스 전도를 많이 해서 대학생들이 교회에 많이 모이게 되었는데, 대학생들이 많이 모인다는 이유로 그 지역에서 이단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답답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며 “이후 지역교회연합활동에 강사로, 한국교회연합활동의 교사 강습회에도 초청을 받는 등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고 했다.

아울러 “두 가지 기도제목 중 하나는 선교를 할 수 있게 교회가 부흥하도록, 또 다른 하나는 김천 지역이 성장하여 교회도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정통령 목사는 총신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김천에 위치한 더세움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김천 예술 고등학교 교목, 김천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전력기술, 한국도로공사, 우정사업본부, 검역본부, 법률구조공단 신우회 지도 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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