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떤 신(神)도 자신을 이러한 권능을 가진 창조주라고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우주의 기원과 우리 인간의 시작에 대해서도 이렇게 명백하게 밝혀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외에 세상에서 신이라 불리는 것들은 다 가짜요, 우리들이 지어낸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의 산물일 뿐입니다. 모두 다 거짓되고 인간적이며 정욕적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같은 거룩함이나 완전한 신성은 없습니다. 온 우주 만물의 모태가 되지 못합니다. 오직 천지를 창조하신 당신만이 진정한 신이십니다. 날마다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시고 저의 모든 것을 아시고(시 139:1-4)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는 하나님(신 32: 10), 당신과 마주 앉아 있으면 저는 절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고아처럼 외롭거나 가난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인자하시고 유능하시고 부유하신 아버지가 생겼고 그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당신이 소유하고 계신 천지의 모든 것이 이제 다 제 것이 됩니다(눅 15:31).
변상봉 – 성경을 품은 기도, 주기도문
진정한 전도란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에게 다가가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공동체와 하나님 안에서의 살아 있는 관계를 통해 태어납니다. 믿음은 공부를 통해 좀 더 풍성해지고 튼튼해질 수는 있지만,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이해한다고 해서, 말씀대로 행하기로 작정한다고만 해서 살아 있는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이해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심겨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웃의 발 아래 있습니다. 예수님의 천국 복음은 구유에서 출발하여 제자들의 발 아래로 그리고 가장 낮은 십자가로 이어졌습니다. 우리의 죄는 높고 큰 것을 욕망함으로 우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정체성을 망가뜨린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낮아짐을 지향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지요.
이재영 – 천국은 이웃의 발 아래
‘교리’란 넓은 의미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말한다. 그렇게 보자면, 사실 모든 참된 설교는 교리를 담고 있는 교리 설교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교리를 좁은 의미에서 정의하자면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의 핵심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교리 설교’란 ‘성경의 핵심 가르침을 주의하여 풀어내는 설교’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설교를 오래 듣는 성도들 중에는 설교자의 설교가 좌충우돌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다. 왜 그럴까? 설교자가 교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설교자의 설교는 일관성이 있고 신뢰를 준다. 성경과 교리를 동시에 제시하는 형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제1형식’은 성경을 강해하면서 교리를 삽입하는 형식이다. 이 경우는 성경 강해에 좀 더 많은 시간과 비중을 할애한다. ‘제2형식’은 교리의 항목을 설명하면서 관련 성경 구절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우병훈 – 교리 설교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