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트럼프 전 대통령 저격 사건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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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도중 총격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미 대선 정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3일 오후(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유세 연설 도중 괴한이 쏜 총알에 오른쪽 귀를 관통당하는 테러를 당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다행이나 미 대선 후보가 저격당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TV 화면엔 어디선가 총성이 연달아 울리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귀를 잡고 단상 아래로 몸을 숨기는 모습이 비쳤다. 이어 경호원들이 다급하게 연단으로 뛰어올라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감싸고, 단상 뒤쪽에 있던 지지자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하는 등 순식간에 유세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얼굴에 피가 낭자한 모습으로 경호원들에 둘러쌓여 피신하는 도중에 몇 차례 오른팔을 들어 건재를 과시하는 모습이 보이자 지지자들 사이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당시 영상을 자세히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연설 내용이 나오는 스크린을 보기 위해 머리를 돌리는 순간 총성이 울리고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귀를 잡고 단상 아래로 몸을 숙이는 모습이 나온다. 이때 얼굴을 돌린 간발의 차이로 괴한이 쏜 총알이 귀를 스치고 결과적으로 치명상을 피한 것이다. 그러나 그 총알에 트럼프의 연설을 듣던 청중 한 사람이 무고하게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총격범으로 지목된 토머스 매슈 크룩스라는 20세 청년은 비밀경호국 요원들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됐다. 공화당원으로 알려진 이 청년이 왜 트럼프를 암살하려 했는지 아직 동기와 배후에 대해선 자세하게 밝혀진 게 없다. 하지만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벌어진 극단의 증오 정치에서 파생한 범죄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유력한 미 대선 후보에 대한 암살 기도사건이 임박한 미 대선의 풍향계를 어디로 돌려놓을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런 폭력범죄가 한 사람의 정신병적 광기에서 비롯된 일이라 하더라도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서로를 향해 도 넘은 비난을 퍼부어 대던 시점에서 터졌다는 점에서 정치 혐오와 선동 정치의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미국 사회는 젠더와 낙태, 이민자 문제를 놓고 양 극단으로 나뉘어 있다. 상반된 정책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보다 양 진영에서 거칠고 자극적인 언사가 일상화하면서 대화와 타협이사라지고 상대를 조롱하고 증오하는 저급한 정치로 변질된 게 문제다.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선동 정치가 이번 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은 링컨 대통령을 비롯해 4명의 현직 대통령이 흉탄에 목숨을 잃은 나라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 상원의원이 대통령 후보 경선 도중에 암살되는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 이후 그 어떤 정치적 암살 시도도 없었던 미국에서 40여 년 만에 다시 정치인에 대한 암살 기도사건이 벌어진 건 정치 양극화가 부른 선동 정치의 폐해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암살 기도사건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 테러”라며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과연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인가 하는 뼈저린 자성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의 정치 현실 또한 미국 못지않게 정치 양극화와 극렬 팬덤 현상이 일상화돼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편 가르기와 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퓰리즘은 증오의 싹을 틔우고 폭력을 실행에 옮기는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 여야 정치인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알아도 모른 척 악순환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로 인해 민주주의의 토양이 오염되고 그 피해가 사회와 국가, 국민에게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지금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진흙탕을 방불케 하는 극렬한 내홍이 벌어지고 있다. 상대를 물고 뜯고 폭로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오죽하면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수세에 몰린 민주당이 앉아서 쾌재를 부른다는 말이 나오겠나.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당이 된 민주당도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사정은 그리 편치 않아 보인다. 소위 ‘개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에 포위된 현실 때문이다. 이들은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해 맹목적인 지지 성향을 드러내며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막강한 팬덤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민주당이 22대 국회 들어 민생을 팽개치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국민이 아닌 이런 강성 지지층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그 선거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해 정치적 폭력을 행사하는 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최악의 범죄다. 내 뜻과 생각이 다르다고 테러와 폭력 행사로 바꾸려 한다면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는 극단적 증오와 폭력을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극성 팬덤에 휘둘려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적 폭력에 정치인들이 어느덧 길들었기 때문이다. 양극화 해소는커녕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양산하는 정치와 정치인은 차라리 없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당분간 선거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저질 팬덤에 기대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우리 사회와 국민이 반드시 기억해 표로 퇴출시키는 게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