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승만 기념관’에 딴죽 거는 불교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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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하와이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태평양 국립묘지를 찾아 헌화·묵념하고 미 참전 용사들을 추모했다. 아울러 김 여사는 하와이 방문 이틀째인 9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설립한 한인기독교회를 방문, 하와이 동포들의 독립을 위한 희생과 헌신에 경의를 표해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 내외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방미 길에 하와이의 태평양 국립묘지와 한인기독교회 등을 찾은 건 그 자체만으로 큰 의의가 있다. 우선 1949년 조성된 태평양 국립묘지는 제2차 세계 대전,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과 함께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이런 곳에 대한민국 최고 통수권자가 자유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감사와 존경의 예를 표한 것이다.

김 여사의 하와이 한인기독교회 방문 또한 미주 한인 이민 역사이자 독립운동의 역사적 산실이라는 상징성을 띤 곳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내포돼 있다. 1918년 12월 23일 일제의 강압을 피해 하와이로 온 이승만은 한인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한인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는 교인 중 12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될 만큼 해외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 교회를 많은 국민이 주목하게 된 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애국애족 정신을 담은 다큐 영화 ‘건국 전쟁’이 상영 돌풍을 일으키면서부터일 것이다. 국가보훈부가 지난 2023년 이 교회가 독립운동에 기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독립운동 사적지 동판을 설치한 것과도 연결이 된다.

윤 대통령은 태평양 국립묘지 참배 이후 하와이 정·재계 동포 100여 명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애국애족 정신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1903년 하와이에서 미주 한인 이민 역사가 시작됐다”며 “이승만 대통령께서 인재 양성과 독립운동에 매진하시면서 국가 건국의 기반을 마련하신 곳도 바로 이곳”이라고 강조했다.

한인기독교회는 하와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지나가다가 유심히 봤을만한 모습을 하고 있다. 경복궁 광화문을 그대로 빼다 박았기 때문이다. 외관보다 중요한 건 고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민족교회라는 특징답게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을 지원한 각종 사료와 당시 이승만의 기독교 정신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자료들은 이승만이라는 위대한 민족 지도자를 조명하기에 한참 못 미친다. 독립운동가 이승만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독립운동의 기반을 다졌고, 대통령에서 하야한 후 다시 이곳에 와 말년을 보낸 유서깊은 곳이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주춧돌을 놓은 인물의 역사를 보여주기에 지리적으로도 멀고 제한적인 게 사실이다. 그런 이유에서 여야 정치인을 비롯해 각계가 자발적으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 기념관 건립의 뜻을 모으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이승만 기념관 건립 후보지로 송현녹지광장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간 후 난데없이 불교계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4년 대처승 등을 사찰에서 퇴출하라고 요구한 ‘정화유시’로 인해 불교계에 갈등을 유발시킨 인물이란 게 반대의 사유로 거론된다. 조계사가 지난 2월 ‘국민 화합을 저해하고 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는 기념관 건립계획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나선데 이어 태고종 총무원도 지난 12일 송현녹지공원에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는 방안에 종단 공식입장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불교계가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이승만 대통령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대통령 재직 당시 기독교세 확장을 위해 불교를 억압했다는 뿌리 깊은 불신이 내재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시가 기념관 후보지로 생각하는 송현녹지광장 인근에 태고종 총무원이 위치하고 불과 200m 거리에 조계사가 있다는 점에서 불교계의 불편한 심기가 아주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열린 송현광장은 서울광장 세 배 크기의 광활한 녹지공간으로 이승만 기념관은 면적이 전체에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현재 이 광장 동쪽에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증한 미술품이 전시되는 미술관이 조성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이 초대 대통령의 종교 색채를 문제 삼아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고 모처럼 일고 있는 국민 공감대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은행 사택이었던 송현광장은 8.15 광복 후 미군·미 대사관 숙소로 활용되다가 1997년 정부에 반환됐다. 이후 높이 4m 담장에 둘러싸인 채 방치됐다가 서울시로 소유권이 넘어오면서 2022년 7월부터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개방된 곳이다. 이런 곳에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우고 토지개혁 등 각종 사회 개혁을 단행했으며, 한미동맹으로 나라를 굳건히 지킨 인물의 기념관 하나 세우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공과 과가 뚜렷한 지도자다. 안타까운 건 그 많은 공로에도 불구하고 집권 말기에 저지른 과가 그 모든 공을 덮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다큐 영화 ‘건국 전쟁’이 가져다 준 나비효과가 바로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교훈이 아니겠나.

불교계의 불편한 심기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 통합과 화합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지 과거에 발목 잡혀 종교적 갈등을 일으킬 때가 아니다. 전직 대통령의 종교색채를 문제 삼아 딴죽을 거는 건 국민 갈등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야할 종교계가 반대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당사자가 되기로 자처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