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탈북민의 날’이 한국교회에 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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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4일은 국가기념일인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이다.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이들의 각고의 노력과 희생을 잊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가 끝까지 보호하고 지켜주겠다는 뜻에서 정부가 이날을 정했다.

통일부의 2024년 3월 기준 탈북민 현황에 따르면 국내 입국 탈북민은 총 3만4121명이다. 1990년대 초반에 연간 수십 명에 불과했던 국내 입국 탈북민 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 계기가 있다. 북한이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는 동안 당국의 통제가 허술한 틈을 타 수많은 북한 주민이 중국 등으로 이동하게 된 거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은 지난 1997년 7월 14일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집계가 시작됐다. 그 이듬해 발표된 누적 탈북민 숫자는 1천명을 밑도는 수준이었으나 2000년에 들어 1000명대에 진입한 뒤 매년 가파르게 상승했다.

김정일이 집권할 당시엔 탈북하다 단속에 걸려도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곧바로 풀려나 다시 탈북을 기도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그만큼 통제가 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김정일 사망한 후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탈북 행위를 ‘국가 반역죄’로 간주해 고문 등 잔혹한 처벌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이른바 ‘3대 악법’으로 불리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3)을 잇따라 제정했다. 외부 영상물이나 노래, 남한 말투 등을 따라 하거나 주변에 유포할 경우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한 건데 법의 명칭은 다르지만, 외부와의 접촉을 금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체제에서 탈북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절체절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로 북·중 국경이 완전히 봉쇄된 후 중국으로 단순 이동하는 북한 주민의 수는 급감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경 통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중국 내에서 제3국으로 이동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현실에서도 자유와 생존을 위한 탈북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북한 당국이 탈북자에게 그토록 모진 형벌을 가하고 중국 내에 숨어 있다 공안에 적발돼 강제 북송당하는 상황이 반복돼도 이들이 탈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한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제21차 북한자유주간에 미 하원 외교위원회 인도태평양 담당 소위원회 주관으로 마련된 ‘탈북민들과의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초대된 탈북민들은 북한 내부로 정보를 유입하는 것만큼 북한을 변화시킬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일가족 9명을 목선에 태우고 탈북한 김이혁 씨는 “북한 외의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여전히 일가족을 데리고 북한에 갇혀 있었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젊은 세대들에게 진실을 바로 알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보유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탈북 후 국내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영 씨도 북한 엘리트 집안에서 자라 김일성대학을 나온 자신을 바꾼 것이 “외부로부터의 정보 유입이었다”고 증언했다.

탈북민이 주축이 된 북한 인권단체들은 최근 대북 전단살포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통일부와 21대 국회에서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대북전단지금지법’이 통과된 후 족쇄에 묶였던 대북 전단살포를 헌재가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북한 주민에게 외부의 정보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오물풍선’ 살포로 대응하면서 이 문제는 ‘남남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북한이 반발해도 북한 주민에게 바른 정보를 주기 위해 전단살포를 중단해선 안 된다는 옹호론과 북한을 자극해 괜한 충돌을 일으킬 수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는 비판론이 맞선 상황이다. 그렇지만 외부 정보에 의해 속아 살아온 자신을 발견하고 탈북을 실행에 옮긴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무탈하게 살아온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처지를 감안할 때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탈북민들은 목숨을 걸고 탈북해 대한민국에 정착한 것에 감사하며 국민의 일원이 된 것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엔 탈북민에 대해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탈북 대학생을 “변절자 ××”라며 폭언을 퍼붓고, 집단 탈북한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에게 “북으로 돌아가라”고 한 이들 모두 국회의원이란 사실에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탈북민을 대하는 비뚤어진 시각을 노골적인 적개심으로 표출하는 이들이 국민의 대표란 현실이 망연자실할 뿐이다.

헌법상 북한 주민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북한에서 살든 탈출해 한국으로 오든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기본법 상식조차 모르는 이들을 대표로 뽑은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한국교회는 이런 수준 낮은 국회의원을 꾸짖어야 할 것이다. 정신 차리도록 주의 주고 고치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내에 정착한 상당수의 탈북민이 중국에서 숨어지내거나 제3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고백한다. 이런 형제자매를 향해 감히 “변절자”, 혹은 “북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할 책임이 한국교회에 있지 않겠나.

정부가 ‘탈북민의 날’을 제정한 건 그동안 시혜와 지원의 대상으로 여긴 북한이탈주민을 헌법상 국민일 뿐 아니라 진정 대한민국과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됐음을 선언하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탈북민을 단순한 지원의 대상이 아닌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통일시대 북한선교의 주체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