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는 피임법과 하지 말아야 할 피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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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과 생명윤리(24)]

피임이 필요한 상황들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육체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허락만 된다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문화명령에 따라 많은 자녀를 생산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육체가 많은 출산과 양육을 감당하기에 합당한 조건을 가진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 피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들이 있다.

여성이 심각한 질병이나 임신하기에 어려운 허약한 상태이거나, 어려운 상황 아래서 출산을 한 후 연이어 임신을 하기 힘든 상황, 심각한 유전적 질환을 가진 경우,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여 취업과 학업을 함께 진행해야 하는 상황,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많은 아이를 양육할 여력이 안 되는 상황들이다. 꼭 필요한 상황에 피임을 선택하지 않으면 낙태의 유혹을 받기 쉽다.

피임의 역사

인류 역사상 오래전부터 산아제한의 한 방법으로 피임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집트 파피루스를 통한 기록을 보면 BC 19세기경부터 피임약제를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2세기경에는 그리스 산부인과 의사였던 소라누스는 생리 기간 중이나 생리가 시작하기 바로 전에는 임신이 일어날 확률이 아주 낮다고 믿었다.

성경에서는 형사취수(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자손을 잇는 풍속)를 어기고 질외사정을 한 오난의 이야기가 나온다. (창 28:8~10)

피임기구의 대표적인 콘돔은 17세기 중반에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여, 19세기에 고무를 이용한 콘돔이 개발되면서 급속하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후 의약의 발달과 함께 먹는 피임약, 피부 내 삽입 피임약, 자궁 내 피임기구, 질격막, 살정제, 난관 결찰술, 정관 결찰술 등 다양한 피임 방법이 개발되었다.

피임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과 기독교의 입장이 조금 다르다.

가톨릭의 입장

로마 가톨릭교회는 고대 시대부터 널리 퍼져 있던 문란한 성문화 풍조에 대한 반동으로 입장을 정해왔다. 오리겐의 스승인 알렉산드리아의 크레멘트 교부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였어도 부부가 갖는 성관계는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해야 하고 그 외에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오리겐은 후에“크리스천이 침대 위에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침대 위에서 부부관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라고까지 말했다.

어거스틴 역시 오직 출산을 위해서만 부부관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피임은 “부부의 침실을 매춘굴로 바꾸는 것이다.”“피임을 사용하는 부부는 혼인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성적 유혹 때문에 맺어진 것”이라고 표현했다. 어거스틴의 영향력은 지대하여 수 세기 동안 내려오면서 피임에 반대하는 가톨릭의 가르침에 정초를 만들었다.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작성한 회칙 후마내 비테 (Humanae vitae)는 피임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모든 성관계의 목적은 출산과 배우자의 일치이며, 이 과정에 대한 인위적인 간섭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간주했다. 자연 주기법에 의한 피임 방법 외에 모든 피임법을 반대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입장

개신교는 가톨릭과 피임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종교개혁운동의 영향과 의학의 발달로 이용 할 수 있는 피임 방법이 많이 개발되었다. 종교개혁운동은 결혼의 목적과 결혼 안에서의 성행위에 대한 관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프로테스탄트는 결혼의 가치를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과 달랐다. 가톨릭과 달리 종교개혁가들은 결혼을 성례에 넣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의 중요성을 동반자 의식과 함께 성행위를 출산과 성적 즐거움을 얻는 것으로 여겼다. 결혼 안에서의 성관계는 부부들이 결정할 수 있는 사적인 일로 여겼다. 하지만 개신교 내에서도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피임을 인정하는 입장으로 정리되었다.

선택할 수 있는 피임법과 하지 말아야 할 피임법

가톨릭의 경우 모든 피임 방법을 반대하지만 오직 자연 주기법에 의한 피임법만 허용하고 있다. 반면 개신교는 선택할 수 있는 피임 방법이 다양하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과 함께 개발된 많은 피임 방법 중에 선택할 수 있는 피임 방법이 있고 피해야 할 피임 방법이 있다. 그 기준은 피임에 적용되는 작용이 수정란을 죽이는 기전이 포함되었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선택 가능한 피임법에는 자연 주기법, 콘돔, 페서리, 살정제, 먹는 피임약, 피하 호르몬제, 난관 결찰술, 정관 결찰술 등이 있다. 이들 피임법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지 못하게 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다.

반면, 수정란의 착상을 막아 수정란을 죽이는 피임 방법인 자궁내 장치, 응급 피임약 등은 하지 말아야 할 피임 방법이다.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운영위원장, 의사평론가,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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