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를 하려면?

오피니언·칼럼

[질문]

흔히 기도를 하나님과 대화라고 하는데 저의 기도는 주로 감사나 간구 제목을 나열하는 식이 됩니다. 자연히 기도를 깊게 하기가 어렵고 허공에다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 듭니다. 대화라면 상대의 표정 말투 어조 등 반응을 봐가면서 티키타카가 되어야 하는데 기도를 혼자 주절주절하다 마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나 신뢰가 부족해서일까요? 기도는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까요?

[답변]

박진호 목사

‘대화’(對話, conversation)란 내 말에 대해 상대가 반응하는 표정, 말투, 어조 등을 직접 대면해서 보면서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보이지 않는 상대인 하나님에게 대화하는 식으로 기도하려니 아무래도 혼자 일방적으로 주절주절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과연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지 의구심마저 듭니다.

이는 신자라면 거의 다 체험하는 현상입니다. 거의 모두가 공통으로 느낀다면 사실상 기도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과 정말로 티키타카 식으로 직통으로 대화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부터 아셔야 합니다.

우선 정말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처럼 친밀하게 여기고 항상 신자의 곁에서 무슨 말이든 들을 준비를 하고 계시다고 온전히 믿고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든 사정을 진솔하게 아뢰라는 것입니다. 굳이 도덕적으로 의로운 내용을 경건한 종교 용어나 형식에 맞춰서 기도할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런 데에 묶이면 아무래도 가식적 형식적인 기도로 흐를 소지가 커집니다.

대화의 기도이므로 신자 혼자서 일방적으로 요구사항들만 나열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들으려고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직통으로 응답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에, 하나님의 기도에 응답하는 방식이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부터 분명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도한 내용을 잘 기억하고서 자기와 자기 주변에서 되어져 가는 모든 여건, 상황, 사건, 인물 등을 기도했던 제목들과 면밀히 비교 검토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응답해 줄지 아무도 모릅니다. 따라서 기도하고 아주 오래 지난 후에 어떤 방식이 되었던, 즉 신자가 기대했던 시기와 방식과 전혀 일치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그 기도와 관련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인정한다면 그분과 티키타카 대화가 된 것입니다.

아버지처럼 친밀하게 여기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버지는 자식의 모든 사정을 훤히 알고 이해하며 충분히 도와줄 능력이 있습니다. 나아가 자식의 먼 장래까지 객관적으로 고려하여서 그에 적합한 계획을 세우고 인도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무조건 자식이 하자는 대로 다 해주지 않습니다. 자식의 요구사항을 수정하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뤄주되, 반드시 또 항상 자식에게 가장 유익한 방향으로만 행합니다. 때로 자식에게 전혀 유익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된다면 아무리 졸라도 절대 그대로 응해주지 않습니다.

그 과정이 자식의 한번 요구로 당장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줄 당기기를 하듯이 자식과 아버지의 대화가 오랫동안 지루하게 이어질 것입니다. 미숙한 자식은 미처 아버지의 뜻을 몰라 종종 의심과 원망이 들 수 있습니다. 자식의 인격이 성숙해지고 세상만사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늘어나면 아버지의 숨겨진 뜻도 조금씩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도 신앙 연륜이 깊어질수록 기도의 응답에 대한 개념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 반대도 성립하는데 기도를 끈질기게 많이 해나가면서 하나님의 역사하는 방식을 성경 말씀과 자기 체험에 비추어서 살펴나가면 그분의 뜻을 더 정확히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일단 어떤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그분과 소통 창구부터 막힙니다.

그래서 그분의 응답이라고 확신할 때까지(그 응답에 설명해 드린 대로 수정 대체 포기 등도 포함됨) 계속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이 바로 대화하는 기도입니다. 또 그 다양한 방식의 응답을 잘 들으려면 기도만 해선 안 되고 성경의 진리를, 특별히 하나님의 역사하는 방식과 그 의미에 정통해져서 영적인 지혜와 분별력도 반드시 함께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성경의 진리를 묵상하며 깊이 연구하고 또 계속 끈질기게 기도하면서 그 응답을 찾고 찾으면, 나중에는 기도 중에도 종종 성령의 미세한 음성으로 응답을 들려주시기도 합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지 물으셨는데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 대화하듯이 자신의 모든 소망 계획 요구 사항들을 진솔하게 털어놓으시면 됩니다. 대신에 다시 강조하지만, 그분의 다양한 응답 방식에 대해서 민감해지도록 영적인 훈련을 병행해야 합니다.

기도를 주로 ‘주절주절하는’ 형식으로 한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것이 아주 좋은 방식입니다. 가능한 정확한 문장이 되도록(그러려면 작은 소리라도 내는 편이 좋음)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하는 내용을 본인이 정확하게 육하원칙(六河原則)에 따라서 인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중에 그대로 응답, 수정, 대체, 포기 등 중에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분별해서 그분과 티키타카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권능과 은혜는 어떤 방식을 배운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신앙 이슈도 누구에게나 통하는 매뉴얼은 따로 없습니다. 자신이 계속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그 응답에 대해서 민감하게 추적해서 자기 스스로 터득해야만 합니다. 기도가 조금 몸에 익어지고 그 응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조금씩 알게 되면 제가 설명드린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음 단계의 기도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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