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순종은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이다. 상실은 어떤 것이 우리를 붙잡아 왔다는 것과 어떤 것도 그것을 대체하기에 충분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믿도록 유혹한다. 순종 없는 상실은 우리를 절망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순종은 믿음을 선포한다. 사실상 순종은 소망의 표현이다. 왜냐하면, 순종이란 하나님께서 정말로 진실로 선하신 분으로서 세계를 주장하신다는 것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그가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진실로 그의 계획안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통과 상실 가운데 있을 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대속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순종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단언컨대, 상실을 위한 하나님의 대답이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크고, 깊고,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너무 강렬하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형준 – 상실, 중독 치유를 위한 성경적 코칭
하나님! 오늘도 우리는 다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을 믿고, 과오와 모순덩어리를 가득 안은 채 이 자리에 왔사오니, 우리의 모든 잘못을 다 용서하여 주셔서 온전한 마음으로 아버지께 예배드리게 하소서. 아버지 하나님! 머리로는 끄덕이면서도 가슴으로는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의 아둔함을 깨우쳐 주소서. 시간이 흐를 대로 흘러서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쳤는데도 우리의 기도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게 하소서. 그럴수록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우리의 마음을 철저히 비우고, 더욱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게 하소서. 더욱 부지런히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께서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하소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게 하소서.
신효균 – 기도의 보물섬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일은 내가 옳다는 점을 설득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니,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일은 애초에 설득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믿게 되는 건 설득이나 논리, 사실은 내가 더 잘 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완벽한 지적(知的) 주장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신뢰는 우리가 옳거나 똑똑하거나 심지어 믿을 만하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는 것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뢰를 얻는 길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을 정확히 보지 못해 다른 사람을 분명하게 보는 법을 배우지 못할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지 않으면 남들의 문제점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자신의 수동성을 못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얼마나 공격적이고 사나운지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없는 ‘적극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오히려 그 사람에게 끌릴 수도 있다.
헨리 클라우드 – 신뢰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