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자’ 대신 ‘길거리’ 선택한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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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가 18일 전면 휴진하고 총궐기대회를 한다고 한다. 서울대 의대 교수 비대위도 17일부터 응급실·중환자실 등을 제외한 수술과 외래 진료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중단을 요구하는 의사들의 이런 집단행동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보다 오히려 반감을 사는 분위기다.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면서 병원마다 의료 공백 사태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그 모든 피해가 아무 잘못도 없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으로 전가되는 실정이다.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들이 오죽하면 의사면허를 반납하고 병원을 떠나겠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다. 낮은 의료 수가에다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과로사의 위험에 내몰리는 전공의들에게 무한대의 희생을 강요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의사가 자신이 돌봐야 할 환자를 내팽개치는 건 스스로 의사이길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어떤 명분이나 이유로도 해선 안 되는 행동이다. 그런 행동을 한다고 정부가 계획을 포기하고 국민들이 의사를 지지해 줄 거라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짓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 지지도는 겨우 30% 선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를 믿고 신뢰하는 국민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런데 국민이 윤 정부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게 바로 의대 증원 등 의료계 개혁 관련 정책이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장소이고 의사들은 그곳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는 직업인이다. 그런데 자기 이익 실현을 위해 환자를 외면하고 병원을 박차고 나가는 이들에게 누가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맡기려고 하겠나.

정부가 추진하는 다른 문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떤 정부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 질타와 심판을 견딜 권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30%대인 윤 정부가 이를 끝까지 추진하는 건 이것이 국민 건강과 생명에 관한 일이고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의대 정원을 급격히 늘리는 일은 대통령 한사람의 의지나 결단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의사들이 우려하는 의료 질의 저하는 물론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정부에게 책임을 돌릴 순 없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도 지방 의대 신설 등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의사단체가 충돌했다. 그러다 코로나19라는 변수를 만나 정부가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것이 오늘의 의료사태를 부른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그 존재만으로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건 의술에 대한 국민의 무한 신뢰 때문일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아무나 되고 싶다고 될 수 없다. 뛰어난 지능과 탁월한 전문지식은 물론이고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헌신이라는 남다른 사명 없이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의사들에게 어느 대기업의 직장인과 비교할 수 없을 물질적 보상이 주어지는 것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 말들이 많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은 그 어떤 직업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의사로서 누리는 지위와 권리가 오롯이 내 능력으로 이뤄냈으니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처음부터 의사로서 모든 걸 갖추고 태어날 수는 없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우수한 두뇌에다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의사로 성실과 진실한 인격을 갖추기까지 국가와 사회, 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쌓은 내 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를 내 가족처럼 여기고 성심을 다해 치료하는 인술로 갚아야 하지 않겠나.

교계도 의사들의 집단 휴진에 일제히 우려를 나나냈다. 한국교회연합은 지난 14일 성명을 발표하고 “의사들의 의료 현장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렇다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내팽개치고 환자 곁을 떠나는 것은 더 큰 불행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진정 의사로서 쌓아온 그 모든 노력과 수고를 수포로 돌리고 국민적 신뢰마저 잃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환자 곁을 떠나는 일만은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 15일 “4개월이 넘는 의료 대란의 기간 동안 의사, 전공의들을 대표한다는 자들이 정부 정책에 적절한 이유도 없이 그저 ‘반대한다’, ‘철회하라’는 구호로 선동할 뿐”이라며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들이 이토록 무 논리 선동으로 국민을 힘들게 하고,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여 소신있는 내부의 소리를 막으며, 집단 이기주의 모습을 보이는 것에 개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사는 병원에서 환자 곁을 지킬 때 비로소 빛이 난다. 의대 증원 문제를 밀어붙인 정부도 책임이 없지 않지만 이에 대응해 환자를 버리고 길거리에 나가 궐기대회를 하겠다는 의사단체는 국민의 신뢰와 존경심 대신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싸우더라도 의사라서, 최고의 지성답게 병원에서 환자 곁을 지키며 싸우는 길을 택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