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 대선의 핵심 쟁점이 된 ‘낙태권’

오피니언·칼럼
사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낙태권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합하는 상황에서 두 지지자들 사이에서 낙태권을 놓고 확연히 다른 지표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크리스천 포스트(CP)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퓨 리서치 센터가 지난주 ‘문화 문제와 2024년 선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 안에 지난 4월 8일부터 14일까지 미국 성인 8,749명을 설문 조사한 내용이 대중에 관심을 끌었다. 이 보고서가 낙태 문제 등 미국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바이든을 지지하는 사람의 거의 절반(46%)이 낙태가 “합법”이길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또 42%는 낙태를 “모든 경우에 합법”으로 만드는 법을 지지했으며, 낙태를 “대부분의 경우 불법”이라고 인식하는 의견은 8%에 불과했다.

반면 트럼프 지지자의 절반(50%)은 낙태가 “대부분의 경우 불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경우에 불법”이라는 낙태 절대 반대 의견도 11%나 됐다. 낙태 찬성은 3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 응답을 놓고 볼 때 낙태 문제가 현재 미국 사회를 양분하는 중요 이슈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이든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 중 절반이 낙태 합법화를 원하고, 반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의 과반수는 낙태가 불법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보아 이 문제가 올해 말 미국 대선판을 흔들 중요한 변수가 되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건국 이후 양당제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나라다. 그 한 축인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을, 다른 축인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을 띠며 상호 지지층을 기반으로 집권해 왔다. 그런 점에서 이 조사 결과는 새롭게 주목되거나 흥미를 끌만한 내용은 아니다. 다만 바이든, 트럼트 두 후보 진영에서 이를 참고로 선거 전략을 세우고 유세과정에서 적극적인 득표 전략으로 삼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을 하는 나라다. 두 당 외에 소수당이 있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에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양당제가 뿌리를 내린 미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진보,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고 각기 색채를 띠어온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두 정당에서 최종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들이 각기 정당이 내세우는 기본 색깔에 따른 정책만으로 당선에 필요한 지지표를 채우기란 어렵다. 소위 집토끼를 단속하면서 중도층과 나아가 상대 지지층까지 얼마나 내 지지표로 끌어오느냐가 선거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될 거란 거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낙태 문제 역시 이런 변수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미국은 지난 1973년 연방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과 함께 낙태를 여성의 헌법상 권리로 인정했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주 법원들이 잇따라 낙태를 제한하는 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러다가 지난 2022년 6월 연방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보수성이 강한 플로리다주 등 일부 주에선 잇따라 낙태를 불법화했지만 그렇지 않은 주에서는 ‘로 대 웨이드’ 판결, 즉 낙태 합법화와 낙태 불법 사이에서 새로운 갈등이 생겨나는 실정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4월 애리조나주 주(州) 대법원이 160년 전에 만들어진 ‘낙태금지법’을 되살리는 결정을 내린 것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애리조나주의 결정이 미국 대선 가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미국의 50개 주 중 한 개 주의 결정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리조나 주가 대선 결과를 좌우해온 경합 주라는 점에서 가볍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 특히 낙태권 이슈가 대선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나온 판결이란 점에서 다른 주들에 미칠 파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여성의 낙태권 허용을 대선 전략으로 삼고 있다. 반면에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은 낙태권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길 꺼리는 분위기다. 트럼프 진영은 지난 4월 낙태 문제는 ‘각 주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정책 공약을 발표했지만 당초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넘어갔다. 보수성향이 강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불법 이민, 안보 등 다른 이슈에 비해 낙태 문제에 신중하게 대응하는 건 이 문제가 부각될수록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낙태 문제를 놓고 벌이는 미국 대선 가도의 복잡한 셈법은 낙태의 모든 권리를 여성에게 주느냐 아니면 법이 일정 부분 제한하느냐에만 온통 신경이 쏠려있다. 그런데 태아도 엄연히 사람인 이상 생명권의 문제라는 걸 잊고 있다.

하나님이 여성의 몸에 태아를 허락하신 건 태아가 어머니로부터 사랑과 영양을 공급받아 자라는데 최적의 공간이기 때문이지 내 몸 안에 있는 소유물이니 마음대로 죽여도 된다는 뜻이 아니지 않은가. 미국 대선에 쟁점으로 떠오른 낙태 문제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인간 생명 존중 차원에서 보호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