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이야기로 된 세상에서 살기

[신간]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 전도
도서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 전도」

구약 성경학자이자 현대 성경신학 연구에 획을 그은 월터 브루그만 교수(컬럼비아 신학교 구약학 명예 교수)는 이 책에서 성경이 말하는 복음 전도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혼돈과 죽음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 둘째,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함. 셋째 선포를 들은 사람들에 의한 전유라는 세 장면으로 된 드라마. 저자에 따르면, 이 드라마의 질서는 성경 여러 곳에서 반복해서 재현된다. 재현되는 시점과 상황은 다를 수 있으나 본질적인 메시지와 더불어 표현의 구조는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된다. 월터 브루그만은 힘주어 말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나는 복음 전도란 ‘본문을 다시 실천하여’ 우리의 본문으로, 또한 우리에게 전해져 우리 자신의 시간과 공간 안에 수용되고, 전유되고, 재연되기를 기다리는 ‘소식’으로 삼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본문을 실천한다’는 표현을 통해 나는 본문의 드라마를 즐기고, 주목하고, 참여하고, 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따라, 모든 본문이 우리에게 유용한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본문이 동일한 변혁적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며 “이어지는 글에서 나는 분명 ‘소식’에 대해 특정한 시각에서 특정한 종류의 표현을 하는 본문들을 선별했다. 나는 일부 본문의 발자취는 복음 전도라는 우리의 주제 및 교회 생활의 신실한 순간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래서 나는 그 방향에 관심을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특히 복음을 표명하는 본문에 집중했던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관행에 호소한다”고 했다.

그는 “교회에서 역효과를 낳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기만적인 싸움에서 본문의 극적인 힘은 대체로 사라졌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표현적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자유주의의 오독 혹은 결국 자유 시장 정책 및 경제와 특징적으로 결합된 율법주의적 순응을 지향하는 보수적 성향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복음 전도는 ‘표현적 개인주의’나 율법주의적 순응으로부터 교회가 해방되고, 이 공동체가 자신의 존재의 모든 차원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삶을 반복적으로 잉태했던 본문의 드라마를 다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고 제안한다. 성경 본문은 우리의 목소리와 다른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본문의 실천’이란 본문의 목소리가 우리의 공동생활에서 온전한 발언권을 갖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복음 전도는 전통적인 교회를 지탱하는 안전한 교회 활동이 아니고, 사회적 현상 유지를 지지하는 의례적인 사업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 전도는 세상과 이웃, 자신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낳고 그 세상에서 다르게 사는 권한 부여를 낳는 변화된 의식의 활동이다. 하나님이 승리하셨다는 소식은 변화된 삶을 의미한다. 즉 그 소식을 듣고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노예를 해방하고, 언약을 맺고, 약속을 지키고, 정의를 명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개인과 공공의 삶을 점차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복음 전도 드라마는 일회적인 사건이 결코 아니라, 승리-선포-전유의 순서를 반복적으로 관통하는 내러티브다. 복음 전도 공동체인 교회는 이 드라마를 재연하고 전유하는 일에 끊임없이 참여하고, 이 위험한 대안적 세계로 재편입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복음 전도 드라마의 중심에 있는 주장의 실재는 우리에게 숨겨져 있어서 확실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기술 능력을 거부한다. 기본적으로 성경의 신앙은 우리의 공동생활의 격을 떨어뜨리거나 예속하거나 분열시키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기셨다고 단언한다. 죽음의 힘은 회복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승리는 새로운 형식과 장소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재연되고 복제된다. 항상 새로운 승리의 결과로, 가장 창의적인 선포와 가장 용기 있는 전유가 우리의 책임으로 남아 있다. 듣고, 응답하고, 전유하는 드라마는 일차원적인 일반화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선포된 소식의 전유는 항상 구체적이고, 특수하고, 전복적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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