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홀로 걷는 십자가의 길(2)

오피니언·칼럼
기고
  •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3. 고독한 사람의 두 가지 지침

최더함 박사

이제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고독한 인생이 당연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조롱을 당하고 오해를 받고 산다 해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꼬리 잘린 여우들의 마을에 정상적인 꼬리를 가진 여우가 방문했더니 모두 왜 꼬리가 잘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달려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에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관과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 잘먹고 잘사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저 세상에 대한 관심도 없고 지식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오직 이 세상에서의 삶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진리는 밥도 안되고 돈도 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영생의 문제는 지금 당장 현안을 처리하는 해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천국과 지옥의 문제는 전설이나 신화의 하나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난 다음에 ‘앗 뜨거워!’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제목은 ‘때는 늦으리’입니다.
온 세상은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을 보세요. 사람들끼리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중에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므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고독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고독’이야말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고독’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를 나누는 최고의 비밀 장소이자 최고의 신령한 복락입니다. 성공회 사제요, 영성가였던 ‘헨리 나우웬’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고독이라는 정원으로 초대한다”며 그 정원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누리는 가장 큰 행복의 장소”라고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독한 사람의 기도를 최우선적으로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복락을 포기하고 고독한 길을 걷는 자의 편이 되시어 그와 동행하시고 그의 길을 지키시고 그의 길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고독한 사람은 다음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는 고독한 자일수록 자신을 크게 평가해선 안됩니다. 간혹 신앙인 가운데 자신의 영적 체험을 너무 소중히 하고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지나치게 그것을 강조하며 자신을 다른 이들과 구별 지으려 하는 분이 있는데 그 자체가 신앙인의 ‘고독’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고독’이라는 정원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작은 자’인가를 실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낮은 자리에 임하고 낮은 자리에서 다른 이를 섬기며 자기를 겸손의 골짜기로 끌고 내려가야 하는가를 가르치십니다. 절대로 고독의 체험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령한 체험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자랑하거나 간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신령한 체험을 무시하거나 손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자신이 고독하다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아픔을 외면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간혹 자신의 아픔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일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끊고 오직 자신의 문제만 해결해 줄 것을 간청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없다면 그는 결코 정당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13세기의 독일의 도미니크파의 신학자였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이렇게 말을 했는데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기도 중일 때, 어쩌면 당신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가 있을 때(고후 12:2) 당신의 머릿속에 음식이 필요한 과부가 떠오른다면 그 즉시 기도를 멈추고 가서 그 과부에게 도움을 주십시오.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아무 손해가 없도록 하실 것입니다”

기도가 중단된다 해도 하나님은 당신이 무엇을 기도할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옛날 119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마을의 교회 앞에 한겨울에 내리는 눈으로 인해 차들의 통행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기의 엄마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에 찾아와 아기가 위독한데 차가 다닐 수 있도록 교회에서 눈을 청소해 주면 좋겠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지금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중인데 감히 외부인이 들어와서 눈을 우리더러 치우라고 하느냐고 고함을 치며 그 여인을 쫓아버렸다고 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모범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포기할 때 어떤 모습이 되느냐 하는 적나라한 사례의 하나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성장한 그리스도인의 실상은 어떤 것입니까?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약점은 그들이 세상에서 너무 이기적이고 편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본질상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순례자인데 정착민으로 살려고 발버둥친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회에 편승하기 위해 애를 쓰는 현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잘못된 도덕에 대항하라는 사명을 받고 세상에 보냄을 받았는데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도덕체계의 필수적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는 가장 슬픈 스토리일 것입니다. (계속)

#최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