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월마다 반복되는 일각의 ‘친일 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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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일부 진보 성향 단체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인사들의 파묘(破墓)를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친일 행적을 했다는 이유에서인데 더불어 민주당 등 야권에서도 이와 관련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어 또 다시 ‘친일 몰이’에 따른 국론 분열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제69회 현충일인 지난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 앞에서 서울촛불행동 등 진보단체 소속 회원들이 현충원 내 친일반민족행위자 파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규명위)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규정한 사람 중 서울현충원에 7명, 대전현충원에 4명이 각각 안장돼 있다며 이들의 파묘를 요구했다.

대전지역 진보단체 회원들도 현충일을 맞아 6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 대전현충원 앞에서 ‘반민족·반민주행위자, 군사반란 가담자 이장을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 촉구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친일 반민족·반민주 행위자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도록 국회는 국립묘지법을 즉각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22대 총선에서 더불어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한 김구 선생의 손자 김용만 의원은 후보 시절 친일파를 현충원에서 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대로 곧 관련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친일 행적’으로 지목된 인사들의 묘를 이장하는 관련 입법 시도는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있었다. 다수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했음에도 ‘친일 행위자 이장을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은 관련 상임위에서 잠자다 폐기됐다. 이미 수년에서 수 십 년 전에 관련 법령에 따라 안장된 인사들을 후세에 ‘친일파’라는 꼬리표를 달아 묘를 파헤치는 게 국민 정서상 용납이 안 되는 데다 국민적 합의 없이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신중론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그런 흐름이 유지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진보단체들이 수년째 국립묘지법 개정을 줄기차게 요구해 오면서 22대 국회에서 압도적인 과반수를 차지한 민주당에 청구서를 들이미는 분위기라 민주당과 야권이 관련 입법 통과를 밀어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2009년 친일규명위와 친일인명사전 등의 주관적 평가를 토대로 국립현충원 안장 국가유공자들에게 ‘친일파’ 꼬리표를 붙여 이장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우선 친일규명위의 친일 반민족 행위자 규정 기준이 공정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부분은 발표 당시에도 좌파적인 시각이 개입돼 편파적 판단을 했다는 지적이 있었고 아직까지 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이 점에 대해선 확고한 입장이다. 국가보훈부는 국립묘지에 안장된 분들 중에 파묘를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 “이분들은 6·25전쟁 당시 나라를 구하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안장 자격이 부여된 분들”이라며 “사후에 제기된 주장만으로 법적 결격사유 없이 이장 여부를 판단할 순 없다”며 선을 그었다.

진보진영이 파묘 대상으로 삼은 인사 중엔 지난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공로가 재조명된 백선엽 장군 등이 포함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군 토벌대로 활동한 이력으로 친일규명위가 지난 2009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보훈부가 당시 친일규명위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족 의견을 청취하지 않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 백 장군에 대한 친일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일단락된 사안이다.

6.25 전쟁에서 나라와 국민을 구한 전쟁 영웅의 묘를 파헤치라는 주장은 조선시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과거 왕조시대에 있었던 묘지를 파헤치는 극형은 생전에 저질렀던 죄상이 뒤늦게 드러난 경우에만 해당됐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국립묘지(현충원)는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9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 동작동, 지금의 서울현충원의 부지를 전쟁 중에 전사 또는 순직한 군인, 군무원과 순국선열 및 국가 유공자를 안장하는 국립묘지로 확보하고 3년 후인 1956년 4월 13일 대통령령으로 ‘군묘지령’이 제정되면서 오늘의 국립 현충원으로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6.25 전쟁 영웅의 묘를 파묘하라는 주장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교계도 국립묘지에 안장한 인사들에 대한 친일몰이와 이들에 대한 일각의 파묘 주장에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지난 7일 발표한 논평에서 “정치권에서는 (나라를 위해) 희생되거나 호국으로 몸 바쳤던 분들에 대해 ‘친일 몰이’로 국립 현충원에서 파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우리는 언제까지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면서 편을 가르고, 또 나라를 위기에서 목숨 바쳐 구한 분들까지, 그 사후에도 욕되게 하려는지 모르겠다”라고 개탄했다.

매년 6월마다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일각의 ‘친일 몰이’는 국가 정통성을 바로 세운다는 그럴듯한 구호 뒤에서 이념 논쟁으로 사회 분열을 꾀하려는 종북 좌파의 의도가 숨어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지금 대한민국이 굳건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 자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걸 시샘하는 세력이 개입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런 불순한 시도는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다 숨진 이들에 대해 국가와 국민이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마땅한 예우로 보답하는 분위기가 사회 저변에 확산될수록 무기력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