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우먼 정선희 집사가 지난 2일 주사랑교회(담임 최정도 목사) 저녁간증집회에서 간증을 했다. 정 집사는 힘든 시기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이야기, 겪었던 시련에 관해 전했다.
그녀는 “‘금촌댁네 사람들’이라는 코미디 코너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그 당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이 코너는 제가 정점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며 “그런데 금촌댁네 사람들 녹화가 주일이었다. 제가 그 당시 차가 없다보니 부모님께서 운전을 해서 금촌까지 데려다 주셨고, 제가 녹화하는 약 4~5시간을 차 안에서 기다려주셨던 부모님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이어 “그때 저희 집 안에 일련의 사건이 생겼고, 저희 어머니께서 교회를 나가시게 되면서 저희 집안이 뒤집혔다. 그래서 제가 금촌댁네 사람들을 녹화할 당시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며 “무명이었던 저는 이영자 씨(개그우먼)가 저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섭외를 받게 되었다. 그 당시 이영자 씨는 슈퍼스타였고, 저는 굉장히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다. 대사 한 마디를 하러 갔었는데, 재밌게 살리고 싶었다. 당시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였는데, 대사를 잘 살리고 싶어 기도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준비를 해서 대사를 던졌고, 정확히 4주 뒤에 반응이 왔다. 스튜디오에 갔었는데, 많은 분들의 함성이 들렸다. 처음으로 인기 체감을 했었던 것 같다”며 “더 놀라운 것은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씨앗으로 삼아 농사를 짓게 하신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정 집사는 “저희 집안은 불교였다. 어머니께서는 종교가 불교였지만 점을 많이 보러 다니셨다. 그런데 저는 좋은 기회로 중·고등학교 시기 미션스쿨에 가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언짢아 하셨다”며 “그랬던 저희 집 안이었는데, 놀랍게도 어머니께서 예수님을 영접하셔서 저희 가족을 다 전도하셨다”고 했다.
이어 “투철한 불교신자이셨던 어머니는 계속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힘들어 하셨는데, 자주 다니던 점집에서 종교를 한 번 바꿔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이후 교회를 다니셨다”며 “그런데 기독교가 지닌 공동체 문화가 어머니께서는 안 맞아 하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안 나가야 하는데, 어머니께서는 새벽기도를 나가셨다. 그러더니 이후에는 아버지와 손을 잡고 교회를 나가셨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서로 사이가 안 좋으셨다. 그런 두 분이 화목하게 교회를 나가시는 것을 보고 오랜 경험상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면서 “왜냐하면 저희 삼남매는 슬프지만 좋지 못한 집안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화한 가족들을 보면 꾸며진 드라마 같았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고, 그러면 폭력을 일삼았다”고 했다.
그녀는 “제가 20살 때였던 것 같다. 방송국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온통 방송국 일에 집중했다. 본래 저의 꿈은 개그우먼이 아니었다. 내향적이었던 저는 어학에 관심이 많았다”며 “친구들 중에 김지선 씨가 있었는데, 먼저 개그우먼이 되었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발전하여 카메라 앞에 누구나 당당하던 시기가 아니었고, 연예인이란 외계인처럼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친했던 친구가 개그우먼이 된 것이다. 저에겐 연예인은 먼 발취에 있었고,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방송국 PD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방송국 알바를 했다. 그 당시 건당 15만 원이었기에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눈물을 머금고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저는 친하지 않았던 방송국과 연결이 되었다”며 “그러던 때에 교회에 잘 다니시던 아버지께서는 교회를 나오셨고, 어머니께서는 끝까지 새벽예배를 나가시더니 방언 은사를 받으셨다. 그때부터 어머니께서는 많이 바뀌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풀리지 않은 관계로 본래 화가 많으셨는데, 이후 어머니께서는 노래를 부르고 다니셨고, 매사에 감사가 넘쳤다”고 했다.
그러나 “좋은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1차 영적전쟁이 일어났다. 교회를 나오셨던 아버지께서 반크리스천이 되셔서 어머니를 핍박하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사업은 더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며 “아버지 사업의 어려움으로 교회를 나가셨는데, 사업이 잘 되기보다 제대로 망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머니께서는 평안했다. 그래서 저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한 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께서 저에게 안부를 묻기를 ‘하나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시며 기다리신다’는 것이었다. 저는 그 당시 어머니께 공격을 했던 것 같다. 금수저도 아니었기에 저는 어떻게든 방송국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교회 가는 걸 강요하지 말라’고 어머니께 말했다”며 “그렇게 어머니는 홀로 2~3년간 신앙생활을 하셨다. 그런데 그때부터 저는 ‘교회를 가긴 가야한다’라는 마음이 짙어졌다”고 했다.
정 집사는 “당시 방송국 생활에 최선을 다해 어필하면서 보람찬 나날이 되어야 했던 저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소모되고 쓰여 지다가 버려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 은혜를 많이 받으셨던 어머니는 저를 찌르는 듯이 교회에 나가자는 말을 많이 했다. 예전에는 팅겨 냈던 어머니의 말씀이 솔깃해지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머니를 따라 성경책을 들고 기도회 자리에 나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머니께서 다니시던 교회가 개척교회였는데, 기도시간 각종 방언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 분위기가 너무 낯설어 뛰쳐나왔다. 어머니께서는 웃으시며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다시는 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새벽기도회에 이후 두 달 정도를 나갔다”며 “지금도 생각하지만 저의 의지는 아니었다. 제 의지로 진행했던 것들은 다 실패했던 것 같다. 그때 하나님이 왜 저를 부르셨는지 살면서 알게 되었는데, 한 달쯤 되던 시기, 제게 안 나타나시는 하나님께 불만이 생겼다. 그야말로 신앙생활이 밋밋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그날도 교회 문을 열고 드러섰는데,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슬픈 감정의 상태도 아니었지만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날따라 낯설게만 느껴졌던 방언기도가 친숙하게 느껴졌고, 제 자신이 물속에 잠겨 있는 듯 평안했다”며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신지를 물었다. 그때 명치를 한대 때리는 것 같은 음성이 들렸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이었다. 비주얼적인 형상이 아닌 확신이었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었구나’라는 확신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자존감이 깎이고 깎여 나에게는 ‘사람들의 인기와 선택을 받지 못하면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없다’라고 생각했던 저는 하나님을 만나면 따지고 싶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졌던 그 순간 따지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제 입술을 통해 고백하게 된 것은 ‘하나님 감사해요’라는 말이었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은 저를 간증하는 자리에 세우실 때, 꼭 사랑을 충전시켜 주신다. ‘사랑 없으면 어떤 것도 울리는 나팔과도 같다’라는 찬양으로 저를 충전시키신다”며 “사랑을 전제로 한 이 디렉션이 여러분 앞에 서는 전부이다. 강렬했던 주님과의 첫 만남이 없었다면 간증의 자리에 나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은 완벽한데 내 자신이 그것에 충족되지 못하고 주님께 맞춰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하고, 매 순간 그 사랑이 절절했기에 그 기억이 저를 울게 한다”며 “이후 변함없는 겉절이 같았던 저의 방송국 생활에도 기뻤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머니가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정 집사는 “서원기도를 했고, 일사천리로 방송 섭외가 들어왔다. 저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같이 잘 풀려만 갔다. 그런데 한 가지 풀리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변하지 않는 아버지였다”며 “어머니와 저의 신앙이 뜨거워질수록 아버지는 저희를 공격했고, 이상행동을 많이 보이셨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쌓여만 갔다”고 했다.
이어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병원에 호송되는 일이 생겼다. 분노에 찬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하던 때에 ‘아버지를 한 번만 안아주어라’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며 “무서운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진정되고 집으로 들어가니 TV엔 불교채널이 켜져 있고, 아버지의 모습은 반항하는 아이와도 같았다. 저는 측은지심의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아버지를 안고 ‘미안하다’라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아버지를 무시하고 정죄했던 지난날의 저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안한 마음에 많이 울었다”고 했다.
더불어 “아버지는 ‘외롭다’라는 말을 했다. 아버지를 끌어안고 많이 울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변화될 줄 알았던 아버지는 술을 계속 드셨다. 변화된 것은 나 자신이었다. 기도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었던 저 자신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제 제가 무엇을 하면 되나요?’라고 기도 내용을 바꿨다. 아버지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까지 20년 이상이 걸렸다. 이 길고 긴 과정 안에 하나님은 많은 사랑과 감동을 보여주셨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위암 투병 중이실 때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서 정 집사는 두 번째 시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시간이 그 다음 시련에 저를 버티게 했다. 남편을 만나 5개월 쯤 결혼을 했고, 10개월 후에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총 1년 5개월로 한 사람을 다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어 “첫 번째 시련을 극복했기에 희망찬 결혼생활을 상상하며 자부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며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저는 ‘버려졌다’라는 느낌을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 슬퍼할 여지도 없이 가혹한 호기심과 잔혹한 루머만이 가득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 집사는 “하루에도 정신이 왔다 갔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제 안에서 풀리지 않는 의혹과 의문이 분노가 되었다. 시련 극복으로 도취되어 있었던 저의 신앙은 한 번에 무너졌다”며 “큰 힘이 되었던 것은 크리스천인 여러분이었다. 제가 알지 못하는 크리스천들이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다. 크리스천 연예인들이 저의 손을 붙잡고 기도하며 응원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저는 그것마저도 외면했을 정도로 슬픔을 넘어 분노의 상태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복의 시간을 가고 있었다.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걱정하지 마’라는 응답을 주셨다. 하나님의 ‘걱정하지 마,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은 정말이다. 그분의 계획에 포함된 말”이라며 “단순 위로가 아닌 회복 프로젝트이다. 그것을 살면서 느낀다. 저는 혼자 싸우려고 했었다. 그래서 혼자 보여주려고 했었다. 그것이 굉장히 허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인도하셨다. 매일 수액을 맞듯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했다”고 했다.
아울러 “방향을 바꿔주신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마음에 응어리를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정확히 가야할 방향을 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빌립보서 말씀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라고 했다. 이 말씀이 ‘내가 견뎌내지 못할 고난은 없다’라는 뜻으로 치환이 됐다”며 끝으로 “주 안에서 저는 너무 자유롭고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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