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최근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관광성, 사치성, 새치기, 식도락 인도 방문 건으로 인해 언론이 꽤나 시끄럽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소위 ‘인권변호사 출신’의 ‘디모테오’라는 영세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변호사라는 말은 레토릭의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모두 담고 있는 위대한(?) 칭호다.
과연 그럴까? 어림도 없다.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요 지옥 갈 죄인에 불과하다 할 뿐이다. 문 전 대통령을 인권변호사로 몰고 간(?) 어용 언론들의 책임은 대단히 크다.
가끔 참되게 살려고 애쓴 인물들이 있기는 하다. 참된 민주화 운동의 3총사 같은 인물이 있다. 바로 김문수, 장기표, 인권변호사 출신 故 조영래 변호사 같은 인물들이다. 故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장기표 선생을 “자기가 만나 본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 중 진실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 유일한 인물”이라 했다. 이 정도는 돼야 참된 민주화 운동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변호사는 어땠을까?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쓴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의 얼마 전 사망한 민주화 운동가 홍세화 선생은 586 운동권들에 대해 <586 민주화 건달들>이라 했다. 5·18 전야제, 빛고을 광주에서 여성을 낀 고급 술집에서 임수경 의원에게 쌍욕을 해댄 그런 586 건달들 말이다.
인물 평전의 최고 권위자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문재인 정부를 ‘내로남불 정부’라며 인물평 자체를 포기한 적이 있다. 고영주 변호사는 문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 하여 법정 투쟁 끝에 무죄 판명을 받았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참모였던 문 변호사에게 당신은 정치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전해진다.
대통령까지 오르게 만든 ‘인권변호사’라는 레토릭은 정말 타당했을까? 여전히 국가가 제공하는 수많은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다’며 양산 궁궐(?)로 들어간 문 전 대통령은 과연 조영래 변호사 같은 인권 변호사가 맞았던 것일까? 그 레토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에토스 → 새치기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고위공직자 신분으로 실향 어르신들 기회를 뺏고 무례하게 북한 이모를 만나러, 온 가족을 동원하여 방북했다. 남한의 모친 문병도 다니지 않던 인물 치고는 참으로 이례적이었다.
공직자로서 잘못하면 북한에 ‘이모’라는 인질을 제공할 수 있는 위험한 새치기였다. 마땅히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도 오히려 양보하는 공직자가 될 수는 없었을까? 얼굴도 모르는 이모를 만나러 새치기라니. 서해 상에서 김정은 정권에 비참하게 사살당한 해양공무원은 월북으로 몰려고 하였으니, 인권변호사였다는 그 에토스는 분명 위선이었다.
또한 국민들이 2년 이상 코로나로 신음할 때 문 대통령 부부는 5년 동안 48회나 외국 순방을 하였다니, 고소까지 당해 협박하였던 모 언론사 논설위원의 평가대로 혹시 김 여사 버킷리스트 때문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얼마나 체코 프라하가 보고 싶었는지, 당황한 청와대 관계자는 방문국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체코슬로바키아 없어진지가 언제인데?)라 둘러대지를 않나, 체코 대통령이 출타 중이었던 체코에 원전 세일하러 간다(우리나라 원전은 다 망쳐놓고?)하지 않나, 남미 아르헨티나를 가기 위한 길에 유럽 체코에서 주유할 계획이 있었다고 변명하였으니, 온 국민이 보고 있었음에도 국가 외교를 사유화한 대통령 가족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1일 평균 1억 원씩 낭비하며 기어이 인도 타지마할을 방문한 것은 압권이었다.
인도는 힌두교 국가다. 가야 허황후는 불교 인물이다. 가락국기에 보이는 허황후가 데리고 온 신하들인 신보(申輔)·조광(趙匡) 등은 고려시대 이후에 한반도에 처음 등장한 성씨들이다. 2천년 전 인도에 정말 신씨, 조씨가 있었을까? 『가락김씨선원세보』에는 허황후의 남동생 보옥선인(寶玉仙人)이 허황후를 따라왔다 기록되어 있다. 장유화상(長遊和尙) 또는 보옥선사라고도 불리는 이 허황후의 동생에 대해 위 세보는 그가 우리나라 최초 불교 포교자라 표현하고 있다.
이 같은 문헌사적 기록들은 허황후의 본가가 과연 정말로 인도인지 아니면 불교국가 월지국이거나 중국 땅인지 아니면 태국, 일본 등 제3의 장소인지 학자들 간에도 최근까지 여전히 치열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다.
불교를 힌두교 아류로 보는 힌두교 국가 인도의 지방 불교 행사에 타지마할 관광과 역사적 검증도 되지 않은 인도 지방의 허황후 관련 문화 행사를 위해 가톨릭 신자 김정숙 여사가 대통령 전용기까지 타고 방문할 만큼 그리 중요했을까?
인도에서도 도 장관을 초청했다고 하니 한국을 ‘동방의 등불 코리아’라 했던 노벨상 작가 타고르를 배출한 인도에, 민족시인 도종환 장관이 영부인 없이 대표성을 띠고 다녀오는 것은 경비도 줄이고 인도나 우리 국민들 보기에도 훨씬 좋았을 것이다.
딸 부부의 새치기는 더욱 유명하다. 항공의 ‘항’ 자도 모르는 사위를 악덕 기업인 이상직의 도움을 받아 태국 이스타 항공 임원으로 새치기 취직을 강행했다. 신설 항공 기업에 비전문가의 임원 취업은 기업을 망가뜨리는 행위다. 새치기 취직에 대통령 딸 부부의 이민이라니. 직원 월급도 안준 악덕 기업인 이상직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자리와 국회의원 공천을 받았으니 이것이 바른 도덕성일까?
아들 문준용도 새치기에서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다.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문 후보는 경선 경쟁자 이재명 후보를 향해 ‘혜경궁 김씨’ 프레임(‘혜경궁 김씨’의 호남 비하, 전해철, 문재인 조롱의 그 SNS) 공격을 폈으나, 이재명 후보는 소위 ‘귀고리’ 문준용 부정채용청탁 프레임 반격으로 문 후보의 대응을 막았다. 받아치기의 명수 이 대표다웠다.
문 후보는 이 대표의 반격에 왜 당황했던 것일까? 대통령 아들 문준용은 국가 지원금을 곶감처럼 야금야금 획득하였으니, 염치없기는 아버지 새치기를 그대로 빼닮았다. 필자의 자녀도 예술가이기에, 예술가가 공공의 지원을 받는 것이 얼마나 눈물겹고 힘겨운 일인지 너무 잘 안다.
더욱 국민 마음이 무너졌던 것은 문 대통령 아들의 건방진 태도였다. 윤 대통령 집권 속에서도 그렇게 건방지게 지원을 받는다면 수긍하겠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 “기회는 균등하며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명문장(?)은 이미 조롱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2. 파토스 → 공감 능력 부족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국민들 갈라치기나 북한에 의해 살해된 공무원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미 잘 드러나 있다. 세월호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하거나, 정인이 사망 사건 때 파양(罷養)을 권한 것은 공감 능력을 넘어 대통령의 인식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분이 동해안 탈북자들을 개돼지처럼 포승줄에 묶어 북송해버린 정권의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필자의 삶에서 아마 가장 큰 충격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개돼지도 그렇게 잔인하게 포승줄에 묶어 폭력적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흉악범? 흉악범일지라도 인권은 있다. 과연 자신의 가족이라도 그렇게 취급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인물이 있을까? 결국 문 전 대통령의 파토스는 위선이었던 것이다. “개 버린 인물”이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덤이었다.
3. 로고스 → 종합적 인식 부족
인권변호사라는 칭호에 담긴 우리 국민 정서는 로고스에 있어서도 일반인보다 뛰어난 판단 능력과 종합적 논리와 인식을 지녔을 거라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지난 문 정권 5년 간 괴이한 장면은 너무 많아, 무어라 언급하기조차 부끄럽다.
문 대통령은 경영학이나 국문학을 전공한 인물을 환경, 핵전문가로 등용하였다. 최고의 환경과 환경 기술 전문가 윤성규 박사를 환경부 장관에 임명한 박근혜 정부와 대비된다. 그 비전문가 환경부장관은 결국 블랙리스트 건으로 억울(?)하게 형을 살았다.
정외과 출신을 국토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집을 가진 국민이나 집 없는 서민들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나, 수십만명의 초중고대학 선생님들을 제쳐두고, 한 번도 교직을 접해보지 않은 인물을 최장수 교육부총리로 임명하였으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권력 사유화 속에 이상직, 조국, 김의겸 같은 부적절 인재들이 득시글거린 문 정권이었다.
김원봉은 6·25의 역적이요 김일성에게 처형당한 북한이 보기에도 역적이다. 즉 남북 모두의 역적이다. 그에게 술 한 잔 따르고 싶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김일성이 살아있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3·1절은 종교인 중심의 민족 최대의 비폭력, 불복종 독립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폭력적이고, 종교에 적대적이며 수령이 관여하지 않은 일은 무조건 폄하하는 북한 정권이 승낙할 거라고 여겨 남북이 공동 기념하자고 했나? 문 대통령의 종합적 인식 부족을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고, 준비를 마치는 대로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고,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라는 낱말이 완전 사라질 것이라 했던 대통령이다. 공무원이 피살되니 월북 했다며 문 정부는 급하게 106건의 관련 공문을 삭제했다고 한다.
많은 상식 있는 국민들은 대통령이 양념이라 했던 소위 ‘문빠’들의 무차별 공격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필자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의 반성경적 행태에 대해 지적하였으나, 이 ‘문빠’들처럼 저질인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진중권 교수는 저질이 아니라 악질들이라 했다.
“분당우리교회에서 주님을 모시고(?) 있다”는 이재명 대표는 뻔뻔한 영성으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무너진 레토릭의 인권변호사 출신 천주교 신자, 디모테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이 천주교 신자를 정말 김일성주의자였다고 평가할까?
목사요 신학자인 필자는 거기까지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권력 사유화와 우기기와 내로남불 가족이 아닌 좀 제대로 된 정치를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암 5:24)
#조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