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본부를 둔 세계기독연대(CSW)를 비롯한 몇몇 국제 인권단체들이 에리트레아에서 계속되는 교회 지도자 구금 사건 발생 20주년을 기념해 런던 에리트레아 대사관 밖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이번 집회는 2019년 5월 이후 런던 주재 에리트레아 대사관에서 열린 첫 번째 대면 시위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집회는 종교 자유를 향한 에리트레아 정부의 가혹한 정책에 대한 관심을 끌고, 에리트레아 정부의 탄압을 규탄하기 위해 열렸다.
CSW는 2003년부터 국가가 승인한 가톨릭, 복음주의 루터교, 정교회, 수니 이슬람교 이외의 종교 단체를 사실상 금지한 2002년 5월 정부 법령을 기념하기 위해 연례 집회가 조직됐다고 밝혔다. CSW는 아일랜드의 ‘처치인체인’(Church In Chains), 영국의 에리트레아 정교회, 휴먼라이츠컨선-에리트레아(Human Rights Concern-Eritrea), 릴리즈 에리트레아(Release Eritrea)와 함께 시위를 벌였다.
CSW는 이 정책으로 인해 종교나 신앙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고 승인된 신앙과 비승인 신앙 모두에 대한 광범위하고 자의적인 구금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릴리즈 에리트레아 이사인 베르헤인 아스멜쉬 박사는 “20년은 너무 길다”라며 “에리트레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수백 명의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어 밤에 집에서 끌려나와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채 투옥되었다”고 했다.
휴먼라이츠컨선-에리트레아의 엘사 키럼 대표는 티그레이에서 수단, 심지어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경을 넘어 안전하지 못한 에리트레아 난민들의 곤경에 대해 조명했다.
키럼 대표는 “매년 수천 명의 에리트레아인들이 다른 아프리카 국가보다 더 많은 수의 조국을 떠나 재판, 고문, 신앙 박해, 무엇보다도 18세 이상의 모든 젊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무기한 국가봉사를 피해 떠나고 있다. 국가봉사는 정부 소유의 공장, 농장, 건설 현장, 광산에서 군부대 생활이나 노예 노동을 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라며 “에리트레아 난민이 된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보호를 원하는 멸망 위기에 처한 사람들 중 한 명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CSW 카타자 곤드웨(Khataza Gondwe)는 에리트레아 정권의 학대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억압적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강제실종, 자의적 체포, 재판이나 정당한 기소 없이 무기한 또는 불특정 구금이 만연하며 가장 사소한 이유로 발생할 수 있다.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야당도 없고 독립 언론도 없으며 사법부는 위태로워지고 국회는 수십 년 동안 열리지 않았으며 민주 선거는 오랫동안 지연되었으며 광범위한 권리 장전이 포함된 훌륭하고 비준된 헌법은 아직 시행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고 했다.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영국과 아일랜드 주재 에리트레아 대사인 에스티파노스 하브테마리암 게브레예수스(Estifanos Habtemariam Ghebreyesus)에게 서한을 전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서한은 기소나 재판 없이 구금된 모든 양심수의 무조건적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사관은 문을 열지 않았고 시위자들은 대사관 우편함을 통해 편지를 보냈다.
앞서 ‘더 타임즈’는 올해 1월 초 런던에서 에리트레아 공동체와 관련된 긴장이 고조되었다고 보도했다.
에리트레아 대사관이 주최한 신년 축하 행사에서 에리트레아 민주화 단체와 경찰이 참여한 가운데 충돌이 이어졌다. 이 충돌로 인해 응급요원 한 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여러 명이 체포되었다.
‘아프리카의 북한’으로 불리는 에리트레아는 1993년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한 후 정권을 유지해온 아페웨르키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다. 이 정권은 무기한 군 복무를 실시하고 반대 의견을 탄압하며 민주선거를 실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