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바람직한 선교 개념 정립의 기준들
1. 명확성을 고려하는 선교 개념
앞에서 우리는 구원개념의 흐름과 선교 개념의 흐름을 살펴보았으며, 그 흐름은 현재 소위 말하는 ‘통전적’ 개념으로 모아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통전적 개념은 나름대로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선교에 균형감을 갖도록 도전하고, 윤리적 과제를 선교적 개념에 포함시킴으로써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책임까지 소중하게 여기도록 도전한 기여점이 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고 했던가? 통전적 선교 개념 역시 상당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고 기독교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위하여 어떤 선교 개념을 지녀야 할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할 기준은 선교 개념의 명확성이다. 개념이란 “개개의 사물로부터 비본질적인 것을 버리고 본질적인 것만을 추출해내는 사유의 한 형식” 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개념이란 가장 본질적인 것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개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성이다. 개념이 명확해야 의사소통이 효율적이고 실천의 효율성이 높아지게 된다. 똑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용어에 대한 개념이 다르면 실천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교’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종교를 선전하여 널리 폄” “진리의 전파를 통한 종교의 확장 활동” 등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 정의에 의하면 선교란 기본적으로 진리를 전파함으로 종교를 확장하는 활동이다. 이것이 기본적인 선교의 의미이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선교 개념의 출현으로부터 선교의 개념은 점차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mission’이란 말이 본래는 기독교의 선교 활동으로 인식되었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mission statement’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각종 단체들이 필히 완수해야 하는 필수 과제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영어권에서는 무엇이든 중요하여 꼭 이루어져야 되는 일은 다 ‘mission’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하지만 기독교마저 이런 경향으로 인하여 혼동을 겪으면 안 될 것이다. 선교가 꼭 이루어야 하는 중요한 과업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중요한 일이 다 선교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스티븐 닐(Stephen Neil)은 중요한 일을 다 ‘선교’ 라고 보는 경향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하면서 만약 ‘선교’ 라는 용어를 이렇게 포괄적으로 쓰려면 세계복음화만을 의미하는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이루고,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 중요한 일은 틀림없다.
하지만 통전적 선교 개념에서처럼 복음화뿐 아니라 인간화, 정의와 평화, 환경살림 등도 모두 똑같이 중요한 선교라고 말하는 것은 선교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개념의 혼동을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선교를 기본적으로 ‘복음화’와 연관하여 생각하는 평신도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고, 이것은 선교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위험성이 있다. 이것은 평신도뿐이 아니다. 선교지도자들마저도 통전적 선교 개념으로 인해서 선교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혼동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마저도 “궁극적으로 선교는 정의할 수 없다.” 라는 말을 했는데, 선교신학계의 거장마저도 선교 개념을 명확히 정의내릴 수 없다면 성공적인 선교 수행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 효율성을 고려하는 선교 개념
선교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다. 이 명령을 실천해나갈 때 반드시 고민해야 할 요소는 ‘효율성’의 문제이다. 인적 자원, 물적 자원, 그리고 시간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효율성을 극대화시켜 나가야 한다. 통전적 선교 개념은 우선순위나 핵심사역 등을 배제하므로 모든 것이 다 똑같이 중요하고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은 포괄성이나 균형감에서 강점을 지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선교의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계를 지닌다.
한 개인의 삶에서도 우선순위를 세우지 않고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돈과 시간을 사용하면 그 인생은 목표를 성취할 수 없게 된다. 하물며 전 세계 모든 교회가 선교를 수행하면서 중요도에 따른 우선순위를 설정함이 없이 모두가 중요하니 다 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를 갖게 되면 선교 목표의 효율적 달성은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나치게 포괄적인 선교 개념을 우려하면서 스테판 닐 (Stephen Neil)은 “모든 것이 선교면 아무 것도 선교가 아니다.”(If everything is mission, nothing is mission) 라는 명언을 남겼던 것이다. 이종성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셋째로, 복음 선교와 사회적 봉사를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는 복음화 운동과 사회 운동을 동일시해도 안 되며, 교회적 개혁운동을 인권운동과 민주화 운동과 동질의 것으로 오해해도 안 된다. 복음운동은 그리스도 침투운동이요 민권운동은 인권 평준화 운동이다. 그리스도 침투운동은 교회만이 할 수 있으나 민권 운동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성서를 통해서 주어진 일만을 수행하는 것이나 민권운동은 교회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교회가 필요에 따라 사회운동에 동참할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 본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먼저 해야 할 일을 먼저하고 나중에 해도 좋은 일은 나중으로 돌리는 것이 옳다. 우리는 물론 사회 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러한 개혁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가 근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구원이다. 교회는 이 구원을 제공한다. 교회만이 이 보화(mystery)를 가지고 있다.
변화가 빠르고 그 충격이 큰 시대일수록 경쟁을 뚫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핵심 역량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할 필요가 있다. 즉 모든 것을 다 하려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을 더욱 강화할 때 효율성이 높아지고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3. 윤리의 위치를 명확히 하는 선교 개념
선교를 수행함에 있어서 윤리의 과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윤리적으로 잘못되면 사람들은 교회가 전하는 복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전통적인 선교에서와 같이 윤리적 차원을 소홀히 하여 ‘제국주의 선교,’ ‘일방적인 선교,’ 또는 ‘자기 이익 극대화를 위한 선교’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반성하고 미리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윤리가 중요하다고 해서 통전적 선교 개념에서와 같이 선교와 윤리를 섞어서 하나의 개념으로 만드는 것도 옳지 않다. 선교는 선교이지 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교에 있어서 윤리의 위치는 무엇인가? 윤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행실로 하나님을 드러내어 선교를 돕는 것이다. 주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윤리의 목표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다. 즉 윤리는 선교를 위한 다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호크마 주석은 “이같이 천국의 규범(3-12절)은 천국의 상속자들의 삶 속에서 작용하여 천국에 대한 증거를 만들어 낸다(13-16절).”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선교와 윤리는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상이하다. 윤리는 상생, 공존, 평화 등을 추구하는 반면, 선교는 복음의 전파를 추구한다. 그런데 복음의 불모지에 복음이 전파되면 대부분의 경우 윤리가 추구하는 공존과 평화에 지장을 준다. 이 경우 공존에 위협이 되더라도 어찌하든지 복음을 전할 것인지 아니면 공존과 샬롬에 지장이 되니까 복음을 전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통전적 선교 개념은 서로 상충될 수 있는 두 가치가 똑같이 중요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적당히 봉합해놓은 개념으로서 충돌의 잠재성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시고 제자들을 선교 현장으로 파송하시면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을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마 10:34-35)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대하여 호크마 주석은 “그런 까닭에 세상은 메시야와 그의 통치를 완강히 거부하게 될 것이고 그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사생결단의 치열한 혈전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요 14:27; 16:33).” 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복음이 전해지면 언젠가 참된 평화가 임하게 되지만 잠정적으로는 평화가 깨어지는 윤리적 문제가 발생되면서 인간적으로 볼 때 불행해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윤리의 문제는 선교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윤리의 문제보다 선교의 문제를 우선순위에 두었다. 통전적 선교 개념과 같이 두 가치를 동등선상에 두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평화와 공존을 선호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논쟁의 소지가 있는 선교보다는 윤리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기독교는 결국 약화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선교 개념은 윤리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선교에 있어서 윤리의 위치를 정확히 설정하는 것일 것이다.
4. 복음적이며 에큐메니칼적인 선교 개념
복음적이며 에큐메니칼적인 선교 개념이란 양 진영의 장점을 잘 흡수하고 통합하고자 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으며, 소위 말하는 통전적 선교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통전적 선교 개념은 서로 상당히 다른 관심을 지닌 두 선교 개념이 어떤 관계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리 없이 그냥 무조건 둘을 하나의 개념 속에 집어넣으면서 상당한 한계점 또한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복음적 에큐메니칼적 선교 개념에서 바람직한 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첫째, 복음주의가 지향한 선교를 선교의 목표로 삼고, 에큐메니칼 진영이 지향한 윤리적 자세를 선교의 방법과 자세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통적인 선교의 한계점은 선교의 목표를 복음화로 삼은 것은 옳은 방향이었지만 목표에 집중한 나머지 방법적인 차원에서 윤리성을 상실한 측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선교의 방법과 선교를 수행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철저히 윤리적인 자세 즉 에큐메니칼 정신을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세력을 무한대로 확장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철저히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를 사랑하는 자세로 선교를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선교의 목표는 여전히 복음화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둘 사이에 순차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복음주의적 관심과 에큐메니칼적 관심은 뿌리와 열매, 출생과 성장처럼 떼기 어려운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뿌리가 없으면 열매는 아예 불가능하고, 출생이 없으면 성장 역시 생각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뿌리와 출생이 중요하며, 이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복음주의적 관심이다. 복음주의적 관심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Missio Dei 개념을 정리한 비체돔도 “그러므로 예수의 나라에 참여하는 일은 항상 회개(metanoia)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교회와 선교에 있어서 항상 그릇된 목표를 세울 것이며, 아무리 경건한 일을 수행한다고 해도 그는 세상 나라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것이다.”고 설파하였다. 김영동도 요더(John Howard Yoder)와 스톤(Bryan Stone) 등의 주장을 따라서 “… 교회의 현존 바로 그것이 교회의 제 1차적 과제‘이며, ’복음이 다른 구조들을 변화시키도록 역사하는 제1차적 사회 구조는 기독교 공동체의 구조‘라고 본다. 가장 복음적인 일은 성령에 의해 조성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즉 복음주의적 관점인 ’복음화‘를 선교의 목적과 우선성으로 두고, 에큐메니칼 관점인 윤리적 자세와 인간화 등은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과 자세 등의 차원에서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한 관계일 것이다. (끝)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Rethinking the Theology of WCC』, 『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 주제 28가지』, 『현대 선교학 개론』(공저), 『한 권으로 읽는 세계 선교 역사 100장면』, 『성장하는 이슬람 약화되는 기독교』, 『현대 선교신학』, 『현대 선교의 핵심 주제 8가지』, 『현대 선교의 프레임』, 『제4 선교신학』, 『성경이 말씀하는 선교』, 『현대 선교신학(개정판)』, 『현대 선교의 목표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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