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명제는 우리의 신앙 방식을 규정하는 기준과 같았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역사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위대한 명제는 소위 꼰대의 논리로 취급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세련된 사고는 이성에 신적 권위를 부여하여 “나는 이해한 만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믿음은 이성적 합리성에 부합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과연 합리적이기 때문에 믿는가? 아니면 믿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일까? 데카르트 이후의 사람들은 과연 합리성에 기반한 것만 믿는 사람들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이 시대 사람들도 사실은 여전히 믿기 때문에 알 수 있다는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제는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데카르트의 논리를 보자.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 ‘생각하는 나’에 대한 믿음의 기초 위에 있어야 했다. 그가 ‘생각하는 나’를 믿지 못한다면, ‘존재하는 나’를 합리적으로 도출해낼 수 없었다. 데카르트조차 믿음에 기초하여 합리성을 도출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합리성은 무에서 유를 도출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는 수학의 영역에도 그래도 나타난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우리가 과학이라 부르는 것도 믿음에 기초한다. 이것을 우리는 가설이라 한다. 빅뱅은 관찰의 결과이기보다, 가설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여 합리성을 쌓아 올린 것이다. 이것을 토마스 쿤은 페러다임이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우스처럼 하늘은 지구 중심으로 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수학 공식을 만들면 그것이 과학이 된다. 실제로 이 패러다임은 16세기까지 과학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요하네스 케플러와 코페르니쿠스가 반대의 관점에 믿음을 가지고 관찰하고 수학 공식을 만들면서 천동설은 미신이 되고, 지동설이 과학이 됐다. 패러다임이 변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믿음에 기초했다는 점이다. 그 믿음이 종교적 믿음이었든 가설에 대한 믿음이었든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한 “알기 위해 믿는다”는 논리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작용한다. 신자나 불신자나 믿는 것에 기반을 두고 합리적 결론을 도출한다. 문제는 믿는 행위가 아니다. ‘잘 믿는가, 아니면 잘못 믿는가?, 혹은 어떤 것을 믿는가?’, ‘합리적 결론, 혹은 비합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가?’ 이다.
코넬리우스 반틸은 타락한 인간의 문제를 합리성 유무에서 찾지 않았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기 때문에 합리성을 추구할 수 밖 없음을 긍정한다. 문제는 합리성의 출발이다. 인간은 합리성의 원형이신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인간은 결국 ‘궁극적 비합리론’에 빠지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반대로 기독교는 합리성의 원형이신 하나님의 계시를 근거로 합리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절대적 합리론’이라고 한다.1) 진리를 빼고 진리를 추구하면 결국 비진리에 도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의 오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진리에 오류를 섞는 데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 세상 철학을 섞으면 더 합리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탁월한 요리사가 완벽한 레시피로 만든 음식을, 아마추어 요리사가 형편없는 요리 레시피를 섞어서 더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사 안에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마 가톨릭의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아퀴나스가 볼 때,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보완해야 완벽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섞은 신학대전을 완성했다. 그 결과, 신학과 철학이 뒤섞인 하이브리드 종교가 탄생했다.
애석하게도 이런 시도가 많은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존경과 흠모의 대상인 팀 켈러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의 글과 강연과 설교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도전을 주었다. 그는 점점 침체 돼가는 미국 복음주의 영역에 강력한 영향력과 활력을 끼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2023년 5월, 그의 임종에 대한 소식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의 영향력은 담임 목회지였던 리디머 장로교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신학자로, 설교자로, 기독교 변증가로, 대중 연설가로, 문필가로 전 세계 기독교인들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이 시대의 인플루언서(influencer)였다. 우리나라에 그의 저서가 30여권이나 번역된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의 영향력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
그의 영향력이 너무도 지대했기에 그의 진화론에 대한 모호한 입장은 우리에게 더 민감하게 여겨진다. 물론 어떤 분은 팀 켈러가 유신진화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고 변호한다. 2012년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팀 켈러는 “theistic evolution”(유신진화론)이 아니라 “old earth progressive creationism”(오랜 지구 점진적 창조론)이라고 명확하게 밝혔다고 한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2012년에 “Creation, Evolution, and Christian Laypeolpe”(창조, 진화, 그리고 평신도 기독교인)이라는 아티클에 실린 그의 주장에 대한 의혹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물론 이 아티클에서 팀 켈러가 자신을 유신진화론자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은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많은 여지를 준다. 우리가 비록 한 시대를 풍미한 팀 켈러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는 냉철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팀 켈러가 2012년에 남긴 아티클이 많은 이들에게 유신 진화론을 옹호하고 있다는 혼란에 불을 지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제 팀 켈러의 “Creation, Evolution, and Christian Laypeolpe”(창조, 진화, 그리고 평신도 기독교인)이라는 아티클에 실린 글을 심도 있게 다루어보고자 한다.
1)코넬리우스 반틸, 「변증학」, 신국원 역(개혁주의신학사, 2017), p.109-110.
#김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