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 27일 서울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한반도 비핵화 등 3국 공동의 현안을 논의했다. 무려 4년 5개월 만에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3국 협력을 제도화”하기로 하는 등 일부 진전된 부분도 있었지만 주 관심사였던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해선 중국의 미온적인 자세로 과거보다 후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3국 정상들은 회의 후 발표한 공동선언문에 △한반도 비핵화 및 납치자 문제 입장 적시, △기후변화·고령화·과학기술·재난·안전 등 6대 분야 협력 확대, △3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속도를 높이기 위한 논의 지속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공동선언 초안에 들어있었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통 목표로 삼는다”는 내용은 끝내 구체적인 방향 설정 없이 원론적인 선언에 그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으나 리 총리가 “계속 소통해 나가자”는 식으로 직답을 피해 변화된 입장을 끌어내지는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3국 정상들이 북핵 문제에 진전된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는 건 처음부터 예상했던 바다. 그렇다고 이번 회의에 소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윤 대통령과 리 총리가 별도 환담에서 탈북민 강제북송 문제에 대해 양국이 소통키로 한 건 큰 의미가 있다. ‘소통’이 어느 선까지를 말하는 건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직후 중국이 자국 내 억류 중이던 탈북민을 대거 강제 북송하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정부로선 한·중 관계에 숨통이 트이게 된 것만으로도 소득이다. 탈북민 강제북송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반 인권국가 라는 비난을 산 중국이 탈북민 문제에 대해 한·중 간에 소통의 필요성을 인정한 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3국 정상회담이 열리는 기간에 정찰위성을 실은 로켓 발사를 예고했다. 모처럼 3국 정상이 만나는 날 탄도미사일 발사로 재를 뿌려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뻔하다. 그런데도 중국 리 총리는 북한의 안보 위협 행위에 대해 “관련국이 자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책임을 한·미·일에 돌리는 듯한 말을 했다. 이런 중국의 태도에서 보듯 이번 3국 정상회의가 북핵 억제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해주길 바랐던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런데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북한을 나무라기는커녕 감싸고 도는 태도는 중국이 지향하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중국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란 지위마저 망각한 듯하다.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따른 대북제재에 중국이 매번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의 이런 태도가 결과적으로 북한의 호전성을 부채질하는 격이다.
하지만 중국이 북핵 문제를 언제까지 방관할지 의문이다. 북한 핵 위협이 고조돼 동북아에 안보 위기가 닥치는 상황을 가정할 때 중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리란 보장이 없다. 되려 중국이 북한의 핵 위협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함으로써 동북아 안보 균형이 깨진 책임이 중국에 전가될 수 있다.
북한이 27일 밤 발사한 군사정찰위성은 발사 직후 폭발함으로써 실패로 끝났다. 북한은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리는 날 새벽에 발사 계획을 일본 측에 통보하고 만 하루도 안 돼 발사를 감행함으로써 3국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번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다행히 실패로 돌아갔지만, 북한이 정찰위성을 갖게 될 경우, 북한군이 우리 군의 동태를 정밀하게 감시할 수 있게 돼 우리 안보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북한도 발사 실패를 인정한 이상 문제점을 찾아 다시 발사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도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다만 사드 배치에 강하게 반발하며 우리나라에 온갖 보복 조치를 쏟아냈던 중국이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이토록 관대한 건 이해가 안 된다. 북한의 정찰위성은 우리의 군사시설만 탐지하는 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중국이든 어느 나라든 얼마든지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발사 시점을 중국 리 창 총리가 중국으로 돌아간 27일 밤으로 잡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북·중 사이에 이미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중국에 득이 되진 않는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체제를 감싸고 도는 한 아시아의 평화와 단결을 부르짖어온 중국의 원대한 포부는 허상이 될 수 있다.
이번 3국 정상회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한·중·일 정상이 다시 만나 진지한 논의를 재개했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비록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핵 문제 등 실질적인 의제엔 진전이 없었지만 한·중·일 3국이 정상 간의 협력체를 정례화한 건 한반도 평화를 견인하는 차원에서 한·미·일 협력 외교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