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성적 지향’ 정책에 미국의 여러 주가 대립 각을 세우며 소송전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성차별을 방지하는 연방 민권법 ‘타이틀 나인’(Title IX)에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성’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자, 4개 주가 추가로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인데 재선을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타이틀 나인’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주는 캔자스, 알래스카, 유타, 와이오밍 등 4개 주다. 이들 주는 지난 14일(현지 시간) 캔자스 주 토피카 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해 연방 정부의 급진적이고 이념적인 교육시스템에 제동을 걸었다.
4개 주가 소송에 뛰어들기 전에 이미 텍사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몬태나, 아이다호 주 법무장관들이 두 건의 별도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소송을 시작한 테네시, 켄터키, 오하이오, 인디애나, 버지니아 및 웨스트버지니아 주 등 다 합해 무려 15개 주나 이의 제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만 봐도 이 문제가 연방정부와 주 정부 사이에서 얼마나 큰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타이틀 나인’이란 지난 1972년 미국 의회를 통과한 미국 ‘교육개정법 제9편’은 말한다. 이 법의 핵심은 미국에서 그 누구도 성별을 이유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 또는 활동에서 제외되거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차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미국 교육에서 성차별을 금지한 최초의 법”이란 수식어가 붙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타이틀 나인’은 스포츠에서의 성차별을 제도로써 극복한 전무후무한 사례로 역사에 기록됐다. 교육 분야뿐 아니라 법, 스포츠, 인권, 페미니즘 등에 영향을 행사하며 미국 사회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이 법을 오늘날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이래 가장 중요한 법’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타이틀 나인’이 적용되는 범위는 여성 입학과 채용의 기회, 성적 괴롭힘과 성폭행 생존자 지원을 위한 정책 개선 등 폭이 매우 넓다. 특히 여성의 스포츠 활동 기회를 확대, 현대 스포츠 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것에 커다란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런 법에 저항의 거센 폭풍이 불어 닥치게 된 건 미 교육부가 올해 4월 말, 기존 ‘타이틀 나인’에 성 고정관념, 성 특성, 임신 또는 관련 상태,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 등을 포함시키면서부터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추가조치가 “성희롱 및 성폭력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성차별로부터 연방 자금이 지원하는 초중고 교육 기관의 학생, 교사 및 기타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존의 ‘타이틀 나인’을 보완 강화한 것이란 논리인데 정말 그런 거라면 미국의 여러 주가 이처럼 반발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다.
지난 1972년 제정된 이 법은 시행 과정에서 숱한 난관과 고비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남녀 간의 차별이 존재하던 때라 급격한 변화에 따른 반발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가 이런 논란을 극복함으로써 오늘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남녀 ‘성차별’을 금하는 법에 ‘성적 지향’의 문제를 개입시킨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구조와 기능이 다르다고 차별하는 것과 성적 지향 즉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건 엄연히 다른 개념이자 방향성이지 않은가. 미국 내 여러 주가 행정부와 소송을 불사하고 나선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개정 조치에 반대하는 측은 ‘타이틀 나인’에 ‘성적 지향’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 “ K-12(미국 초중고 교육) 체제에서 트랜스젠더 이념의 좌파적 유행을 제도화하려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또 “학교가 자발적인 낙태를 원하는 학생과 직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며 이는 “‘타이틀 나인’의 낙태 중립 조항과도 직접 충돌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최근 캔자스 등 4개 주가 제출한 고소장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의 근거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소장은 “이 불법 규정이 소녀와 여성들을 생물학적 남성과 경쟁하도록 강요하며, 특히 운동 경기를 포함한 학교 교육 프로그램 및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을 특히 지적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개정판 ‘타이틀 나인’에 우려의 시선이 쏠리는 건 성차별을 금지한 교육 관련법이 본 뜻과 목적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피부색, 장애인, 빈곤층,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 범주에 ‘성소수자’를 포함한 ‘차별금지법’이 역차별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미국 내 이런 갈등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있다. 바로 여성, 장애인,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법이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굳이 ‘성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했던 21대 국회의 시도와 방향성에 있어 일치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타이틀 나인’은 교육에 있어서 성차별을 금지한 법이라 ‘차별금지법’과는 태생적으로 다르다. 다만 매우 유사한 방향성을 띠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런 점에서 많은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법(안) 때문에 사회 갈등과 분열이 촉발되는 양상은 미국이나 한국 모두에게 순기능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