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는 말-동성애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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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 본 섹슈얼리티(50·마지막 편)
민성길 명예교수

이제, 지금까지 연재한 동성애에 대한 글 전체를 요약하고 결론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필자가 지금까지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한 바의 근거는 오로지 의학 논문들로서, 성경에 비추어 본 것이다.

첫째, 성경 말씀은 의학적 증거들과 다르지 않다. 의학은 자연-생물학-건강과 질병을 연구하는 것인데, 자연-생물학-건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므로 의학적 발견과 다를 수 없다. 한편 질병이 인간 세상에 들어온 것은 성경에 의하면 인간이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말씀은 현대 질병 이론과 일치한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에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으로서 당뇨병은 대부분 탐식에서 온다. 심혈관장애들은 흔히 산업사회의 경쟁으로 인한 긴장에서 온다. 탄 고기와 환경오염은 암의 원인이다. 산업발달로 인한 미세 플라스틱들은 DNA를 손상시킨다. 스스로 사망으로 이르게 하는 “자살”의 근저에는 “억압된 분노”가 있다. 분노 역시 대부분 욕심 때문이다. 동성애도 성적 욕망 때문이며, 그 지향이 문제인 것이다.

둘째,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성욕”을 통제하지 못하면 죄를 짓고 죽음으로 다가간다. 그 중에서도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며, 그래서 죄이며, 그래서 생명이 상해된다. 의학적 연구에 의하면, 동성애자들에게는 이성애자보다 더 성병과 질병이 많으며, 정신건강도 더 나쁘며, 약물남용과 자살자도 더 많다. 동성애는 결과적으로 생명을 잉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죽음과 연결된다. 동성애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은 화려하지만, 자신들끼리의 쾌락 이외 열매가 없을 뿐 아니라, 해로우며 그래서 병적이다,

셋째, 동성애자들과 그 옹호자들은 인권 보호와 성해방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동성애를 “정상화”하였다. 그들은 1970년대 초 수년에 걸친 미국 정신의학회를 향한 거친 시위를 통해 동성애를 정신장애 목록에서 제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당시 동성애 정상화의 학술적 근거는 오로지 두 편의 문헌이었다. 하나는 킨제이보고서, 다른 하나는 심리학자 E. Hooker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투사적 심리검사로 비교 연구한 논문이었다. 그러나 이 두 문헌들은 처음부터 그 진실성에 대해 의심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핑계로, 동성애의 “해방”운동은 동성혼 합법화, 차별금지법 등으로 더욱 진보하였다.

넷째, 1990년대에 이르러 동성애가 타고난다거나 유전된다는 증거들이 탐구되었다. 일란성 쌍둥이 연구, 유전인자 연구, 태아기 반대성호르몬 영향 연구, 뇌 국소화 연구 등등. 그러나 아무 연구도 동성애가 유전된다 또는 타고난다는 증거를 내어 놓지 못하였다. 2010년대에 이르러 유전연구의 최첨단인 전장유전체연관연구(genome wide association study. GWAS)도 동성애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동성애 행동과 관련된 몇 개의 유전자들이 확인되었는데, 이들은 이미 조현병, 우울증, 양극성장애 등 정신장애와 관련된 것으로 밝혀져 있는 유전자들이다.

또한 자신들이 동성애자인 연구자들이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유동적이라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즉 동성애 행위는 타고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다른 모든 행동들처럼 인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섯째, 동성애는 병적일 수 있는 여러 인간행동 중 하나일 뿐이다.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듯, 동성애도 쉽지 않지만 치료가 가능하다. 의사들은 동성애를 19세기부터 정신장애로 보고 정신과적으로 치료하려 하였다. 그 대표적 의사들이 정신분석가들이었다. 그들은 20세기 초부터 프로이트가 말한 “정신성발달”이 중단된 결과라는 이론에 근거하여 전환치료를 해왔다. 그들은 정신성발달이 중단된 이유로, 소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소아기 트라우마로 보았다. 또한 1970년대부터 기독교 신앙으로 동성애에서 회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왔는데, 그 회복의 증거들이 있다.

여섯째, 2020년대에 이르러, 다수 연구들이 동성애를 “적대적 소아기 경험“(adversary childhood experiences)과 원인적으로 관련시키고 있다. 즉 어린 시절의 심리적 트라우마, 특히 성폭력 피해 경험이 이후 동성애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신분석 이론과 일치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적대적 경험은 동성애 이외에도, 우울증이나 불안 등 각종 노이로제, 마약중독, 자살, 심지어 신체 질병에 대한 취약성 등의 원인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어린 시절에 겪는 트라우마란 결국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부모의 부재, 부모의 냉담, 부모의 폭력, 등등이다. 어린이가 좀 더 자라면 학교와 친구들, 동네 환경, 사회환경이 주는 폭력(학대)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어른으로 성숙해져 간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가혹하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전환치료를 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정신치료“를 통해 해결함으로 동성애에서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방법은 ”노이로제“를 정신치료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동성애가 장기화되어, 알코올 중독처럼 성중독 수준에 이를 수 있는데, 그러면 회복치료가 보다 어려워진다. 이런 경우 신앙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증거들이 있다.

끝으로, 우리는 인권, 다양성, 평등, 포용 등을 내세우며 소위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예를 들어 지금, 동성애자들과 그 옹호자들은 “전환을 시도하는 행위”가 동성애자들에게 더욱 해로움을 끼친다 하여, 못하게 하고 있다. 이는 동성애에서 벗어나고자 원하는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것이다. 일부 동성애 옹호자들은 심지어 소아청소년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하며, 소아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옹호한다. 극단적으로 NAMBLA(North America Men-Boy Love Association)라는 단체는 남자 동성애자 성인이 소년들의 동성애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제 소아성애 및 어린이 해방”(International Pedophile and Child Emancipation. IPCE)이란 단체에 속한다. “어린이의 인권과 해방”을 핑계로 소아성애를 옹호하다니, 그들의 궤변은 이처럼 심각하다. 그러한 주장은 1960년대 등장한 성해방 이데올로기와 일맥상통한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결코 차별을 옹호하지 않는다. 단지 차별금지법에 내포되어 있는 “성정치”의 독소조항들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언한다면, 모든 질병이 그러하듯, 동성애도 사후 치료보다 조기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어린이들을 어떠한 종류이든 트라우마에서 보호하면서 올바르게 훈육하면, 사회에 동성애는 물론 여러 정신건강문제들이 확산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여기에 부모의 일차적 역할이 있다. 또한 같은 의미에서 성교육을 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교회도 참여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적대적 경험들을 ”사랑의 결핍“으로 경험한다. 사랑의 결핍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런 상처로 인해 생겨난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인정해 준다고 해서, 그런 깊은 결핍이 채워지지 않는다. 사랑은, 원초적으로는 아기의 어머니와의 애착 관계, 소아의 경우 돌봄(care), 그리고 성인의 경우 소중히 함과 책임과 헌신 등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려는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향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자명해 진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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