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눅13:5 이하에서, 어느 한 종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삼 년 동안 열심히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고 가지치며 잘 가꾸었다. 그러나 열매가 열리지 않자 주인은 그 종에게, 그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했다. 종은 “한 해만 더 김을 매고 거름을 주겠다”하며, “만일 이후에도 실과가 없으면 찍어 버리소서” 했다. 과일나무에 열매가 열릴 때(3~4년)가 되었는데도 열매가 없는 것처럼, 여러 해 동안,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았으면서도, 믿음(열매)으로 살지 못하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열매가 열리지 않는 포도원의 무화과나무와 같다는 의미다. 유실수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처럼, 회개한 자는 그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한다.
김태완 – 열매로 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론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자유의지란 용어를 사용해서 하나님은 원죄에서 자유롭다는 논리를 만들었지만, 동일한 자유의지가 사람들에게 하나님도 원죄에 책임이 있다는 정죄로 발전한 것이다. 그 후, 초대교회 시대의 대표적인 교부의 신학적 토대에 교리배경을 둔 수많은 신학교와 신학자는 아무런 저항 없이 자유의지를 수용했고, 이것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자유의지의 올바른 정의는 ‘그 의지적 결정은 미리 예정될 수 없어서, 그 결과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의지’라고 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가 있었다면, 그들이 선악 과실을 따서 먹게 되는 것을 하나님조차 예정할 수 없어야 한다.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진정 있다면, 각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린 후에야 하나님조차도 그 사람이 무슨 결정을 내렸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사람이 아무리 자신이 자유의지에 따라 하나님을 믿게 되었노라고 해도, 이는 그의 주장일 뿐, 거듭남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다. 성령님의 역사로 거듭남을 겪은 사람의 영은 항상 하나님 말씀에 영적인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체로 창조적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의 말씀은 점차 그 거듭난 영의 사람을 변화시켜 나간다. 이 변화의 시기가 어떤 이에게는 순식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많은 세월이 지나기도 한다.
장영수 – 은혜 장막과 자유의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예수님과 사귀고 교제하며 기쁨을 누리는 비결은 죄를 깨닫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신앙생활의 모든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한서신은 “하나님은 빛”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부흥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일부 담임목회자는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러한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위해 부교역자들과 교인들을 착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고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인물의 대표적 사례로 요한은 데메드리오를 제시합니다.
최성훈 – 핵심 본문으로 보는 성경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