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 신앙과 크리스마스에 대한 고찰

목회·신학
학회
장요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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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건희·방원일 박사,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424회 학술발표회서 발제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424회 학술발표회 진행 사진.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한국기독교역사학회(이재근 회장)가 4일 오후 제424회 학술발표회를 온라인 줌을 통해 진행했다. 발표회는 김성은 교수(한국기독교역사학회 지역이사, 전남대 교수)의 사회로, ▲류건희 박사(감신대 석사, 만리현교회 전도사)가 ‘한국의 개신교와 샤머니즘의 관계 연구; 초기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의 샤머니즘 수용’ ▲방원일 박사(숭실대 HK연구 교수)가 ‘1950년대 크리스마스를 통해 본 한국 사회의 물질적 변화’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 샤머니즘 신앙, 한국인의 개신교 복음 수용 수월하게 도와

먼저, 류건희 박사는 “오래 전부터 실천신학 분야에서 샤머니즘화 된 개신교 신앙은 타파되어야 할 대상으로 손꼽히는 요소 중 하나였다”며 “그러나 한국 개신교회 내에서 타파의 대상이 되어버린 샤머니즘을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부적절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한국의 샤머니즘은 19세기 말의 한국인이 수월하게 개신교 복음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사실은 선교 초기 다수의 내한 선교사의 기록과 증언에서 발견된다”고 했다.

류 박사는 “샤머니즘(shamanism)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라시아 북부와 같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신앙 체계”라며 “루마니아의 종교학자인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정의에 따르면 샤머니즘은 ‘고대의 접신술’(Archaic Techniques of Ecstasy)로써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두드러진 종교현상”이라고 했다.

이어 “대부분의 선교사는 한국의 샤머니즘을 한국인이 지닌 고유한 토착적 신앙으로 보았다”며 “또한 샤머니즘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 다양한 종교 형태를 혼합시키며, 다소 종교적인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러한 점을 부정적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나, 선교적 접근 방식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고 했다.

더불어 “언더우드, 게일, 마펫 등의 장로회 선교사들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 한국인의 샤머니즘을 신앙을 물리치거나 타파하고자 했던 반면, 존스, 헐버트 등의 감리회 선교사들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샤머니즘 신앙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이 지니던 샤머니즘의 신앙과 그와 관련한 종교적 개념이 한국인의 개신교 복음 수용을 수월하게 도왔다”며 “그 영향을 네 가지로 구분하면 한국인의 최고신 개념이었던 ‘하느님’과 화해의 성격을 지녔던 ‘무당’, 범신론적 존재인 ‘신령’ 그리고 지극정성을 다했던 ‘굿’”이라고 했다.

이어 “이러한 개념은 한국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고, 그 성격은 개신교의 것과 상당 부분 유사한 것이었다”며 “초기 선교사의 기록과 증언을 통해, 이러한 샤머니즘의 개념이 한국인의 개신교 수용을 수월하게 도왔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추측하건대, 오늘날 대다수의 개신교인과 당시 초기 선교사의 샤머니즘 인식은 아마도 유사할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샤머니즘은 원시적이며 부정적인 요소로 남아있을 것”이라며 “그토록 부정히 여기던 샤머니즘 신앙이 당시 개신교를 수용하던 한국인에게 있어 도움을 주었으며, 다른 차원에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했다.

◆ 한국 크리스마스의 특징, 교회와 사회의 이원적 문화의 공존

두 번째로 발제한 방원일 박사는 “한국 크리스마스의 특징은 교회와 사회의 이원적 문화의 공존”이라며 “교회의 크리스마스 실천은 선교 초기에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에 확립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이전과 연속성을 가지면서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 발전하였다. 통금에서 해방된 환경의 영향으로 교회에서도 연극, 성가대, 교회 철야의 실천이 확대되었다”고 했다.

이어 “한국에는 교회 밖의 크리스마스 실천이 존재한다. 기독교인보다 더 많은 수의 비기독교인에게 크리스마스는 중요한 명절이 되었다”며 “미 군정기를 계기로 주어진 공휴일과 통금 예외라는 조건에 힘입어, 억눌린 욕망이 분출되는 해방구로서의 속성은 20세기 한국 크리스마스를 강력하게 지배하게 된다. 선물 문화의 강화로 백화점과 제과점에서 중요한 날이 되었다”고 했다.

특히 “댄스홀로 대표되는 유흥가는 이 특별한 날의 주역이 되었다. 유흥으로서의 특징은 1960, 70년대에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며 “그러나 그러한 발전의 바탕이 1950년대 후반에 마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50년대는 일제강점기와 60, 70년대를 연결하는 기간으로, 현대 크리스마스의 모습이 완성된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1950년대라는 시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시기 크리스마스는 상당히 활성화 되었다. 사회적 에너지가 분출되는 시기였다”며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아이가 출산한 베이비 붐 세대를 일컫는 ‘58년 개띠’라는 표현이 있다. 1950년대 말은 전쟁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에너지가 응축되고 욕망이 분출하는 시대였다. 60, 70년대 고도성장의 발판이 마련된 시기였다. 크리스마스는 새로운 에너지가 펼쳐진 중요한 무대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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