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원치 않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불행하기보다는 행복하기를 갈망한다. 가난한 환경에 태어나서 평생 행복이 뭔지를 한 번 경험하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주위에 너무 많다. 그런가 하면 행복한 순간들을 맞보긴 하지만 금세 불행한 환경이 찾아와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번 찾아온 행복을 영원히 붙잡아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행복은 원래 방랑벽과 바람기가 있어 한 개인이 계속 붙잡아 둘 수 없다.
이상한 것은 행복이란 파랑새는 잡아두려 하면 할수록 훨훨 날아 가버리는 못된 버릇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행복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잡으려 애쓰면 애쓸수록 멀어져가는 수가 많다. 리처드 J. 라이더와 데이비드 A. 샤피로가 공저한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복을 풀어줘 보라. 그러면 당신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행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행복’이란 말이다. 명언이다. 이런 책은 이 두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제값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젠가 <포브스(Forbe)>가 출간 75주년을 기념하여 ‘왜 우리는 그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토록 불만인가?’라는 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 거기 실린 유명한 저술가들의 글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의 삶에 뭔가가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빈자리는 세상의 어떤 신비로운 마법이나 맛있는 음식, 재미있는 TV 연속극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꿈을 갖고 살아간다. ‘언젠가는 행복하리라!’는 꿈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선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성공하지 않고 행복한 경우는 사람들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과연 성공하면 행복할까? 성공자들에게 물어보라. 행복한지를.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그것을 이루는 즉시 허탈감에 빠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뭔가를 성취하는 순간 더 큰 욕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애당초 우리는 이루지 못할 꿈을 꾸어온 셈이다. 내 경험상 행복과 성공에 관해 깨닫고 정리한 바가 하나 있다. ‘성공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지금도 성공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이기는 자가 최후에 살아남는다’가 아니라 ‘최후에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자다’란 말이 있듯이, 성공하는 자가 행복한 자가 아니라 행복한 자가 성공한 자다. 알고 보면 별것 아닌 얘기 같은데, 이 소중한 진리를 대다수는 잘 모르고 있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고 행복을 목표로 정하란 말이다. 추구하던 성공을 성취한 뒤 갈등과 비극과 불행을 경험하는 이들의 예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행복한 자들은 남들이 볼 때 성공해 보이지 않더라도 늘 웃고 감사하며 산다.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고대하고 사는 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하다.
인터넷 기사에 내 눈길을 끄는 사연이 하나가 떠서 읽어보았다. 베트남 매체 소하(SOHA)는 떠이닌성 쩡방에 사는 응우옌 딴 뚜안(Nguyen Thanh Tuan, 30)의 근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2016년 집에서 뚜안의 차에서 발생한 불이 집으로 옮겨붙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지만, 위층에서 자고 있던 엄마를 떠올리고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를 구한 뚜안은 문에 다다랐을 때 옆에 있던 오토바이에 걸려 넘어졌고, 자신은 안에 갇혀버렸다. 이에 엄마는 경미한 찰과상만 입은 반면, 뚜안은 심한 화상을 입어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는 몸의 80% 이상에 화상을 입었으며, 가슴 앞쪽 피부 전체가 심하게 훼손됐고 어깨와 손은 거의 타버렸다.
병원에서 치료받은 기간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의사는 뚜안의 두 다리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절단하지 않으면 생존율이 50%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기에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그는 다리를 절단했다. 뚜안은 “솔직히 너무 힘들다. 굶어 죽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면서도 “엄마를 살려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너무도 가슴 아픈 얘기다.
비록 자신의 몸은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살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누가 봐도 그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비참한 사고를 온몸으로 경험한 장애인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자기 목숨만큼 소중한 어머니를 살렸기에 행복해하는 그야말로 진정 성공한 사람이다.
창세기 39장은 형통한 한 소년을 소개한다. 요셉이다. 우리말로는 ‘형통했다’(창 39:2, 3, 23)이지만, 영어로는 ‘be successful’ 즉 ‘성공했다’는 말이다. 비록 보디발에게 인정받아 가정 총무의 직책을 맡긴 했으나, 여전히 그는 노예 신분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결코 성공한 자가 아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를 ‘성공한 자’라고 거듭 표현한다. 이유는 뭘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뚜안은 비록 자신이 처참한 장애인이 되었더라도 어머니가 무사하니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행복한 자가 성공한 자가 맞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하시는 우리가 성공자가 아니면 누가 성공자란 말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해야 정상이다. 그런 사람을 성경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걸 제대로 인식한다면 늘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마땅함을 꼭 기억하고 살자.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