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의 종교다원주의 문서 및 총회(통합) 에큐메니컬위원회 문서 평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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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기천(전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2) 바아르 선언문의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신학적 이해

소기천 교수
바아르 선언문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이 종교 다원주의의 전체 영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전을 준다고 전제를 하면서 기독교인이 종교 다원주의를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시다”(고린도전서 15-18장)라는 말씀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면서 하나님과 이웃과 만남이 깊어지는 기회로 간주한다. 이러한 주장은 만유재신론을 기반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종교 다원주의의 이념을 보여줌으로써 타종교와의 대화를 조건 없이 추진하게 된 신학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바아르 선언문은 기독교인이 "하나님께서 다른 신앙을 가진 남성(과 여성)에게 주신 지혜, 사랑과 능력"(1961년 뉴델리 보고서)에 대한 새롭고 더 큰 이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타종교인의 삶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CWME 보고서, 1989년 샌안토니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이미 1961년의 뉴델리 보고서와 1989년의 샌안토니오 보고서를 기초로 한 것인데, 이 두 보고서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바아르 선언문이다.

이제 종교 다원주의에 집착하는 바아르 선언문은 금기를 넘어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타종교인에게서 선과 진리와 거룩함을 인정하면서 보편적인 창조와 구속적인 활동에 관한 대화 지침(1979)에서 제기된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런 주장을 우연한 돌출행동이 아니다. 이미 WCC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종교 다원주의의 숨겨진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이로써 WCC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복음의 특권이 실종되고, 모든 인류에 대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특별한 구속 활동(23항)과 관련하여 우리는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개인적 헌신으로 한정하는 신학을 넘어서야 할 필요성이 둑이 터지듯이 밀려오게 되었다. 여기서 개인 구원은 넘어서야 할 신학적 도전 앞에 서게 됨으로써, 타종교와의 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구원이 지닌 절대성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그럼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해 종교 다원주의가 받아들여지고, 예수를 통한 구원이 절대성이 포기되는 상황에서 개인 구원을 이루시는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바아르 선언문의 “성령과 종교 다원주의”라는 항목에서 "교회 밖의 하나님의 사역을 성령의 견지에서 이해하는 것이 옳고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과 관련된 대화를 위한 지침(1979)에서 제기된 질문에 대해, 성령께서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전통에도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주장한다. 문제는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타종교와의 대화를 추구하는 WCC 입장에서 반드시 기독교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연 타종교에도 성령이 있는가? 성령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내용으로 타종교에는 전혀 없는 삼위일체 신학이 핵심이다. 그런데 과연 타종교인에게 성령을 인정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바아르 선언문의 종교간의 대화: 신학적인 관점에 주목헤보면, 바아르 선언문은 양비론으로 종교 간 대화는 "쌍방향의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인은 열린 정신으로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믿음을 증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주장하는 쌍방향은 사실상 타종교인에게 열린 마음을 가지라는 의도를 비친 것이다.

더구나 바아르 선언문은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기독교인은 신성한 신비의 측면을 진정으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타종교인의 증언이 기독교인에게 자신의 신앙생활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주장일 뿐이지 알맹이 없는 내용이다. 오히려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을 무력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이 새벽기도를 하는데, 승려들은 새벽 염불을 4시에 시작한다. 그럼 5시에 시작하는 기독교인의 새벽기도회가 승려들보다 시간이 덜하기에 못하다는 것인가? 바아르 선언문은 앞서도 언급한 단어를 여기서 다시 언급하면서, 기독교인은 살아 있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이 기독교 진리를 더 완전하게 이해하는 경험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기독교의 특수한 경건이나 기도생활을 타종교와 비교하면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기에 도움이 안 된다. 기독교 신앙생활을 무력화시키고 무슨 타종교와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가?

바아르 선언문을 따라서 타종교와 대화 및 종교 다원주의를 실천하다가는 교회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문을 닫게 된다. 바아르 선언문에서 언급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타종교와 비교하려는 의도는 드디어 2002년 WCC 중앙위원회의 “종교의 다원성과 기독교인의 자기 이해”에서 본격화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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