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이슈로 약 7,600개 교회가 탈퇴한 미국 연합감리교회(UMC)가 최악의 재정 상황에 직면했다. UMC 총회에서 대의원들에게 제출된 2025~2028년 교단 예산안은 3억 5,310만 달러(한화 약 4,855억 원)로 지난 2016년 정기총회에서 통과된 예산에서 42%나 감소한 금액이다. 교단 역사상 가장 큰 예산 삭감이 가져올 교단 산하 교회 사역과 선교 현장의 부정적 여파가 벌써 우려될 정도다.
연합감리교회의 재정 감소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동성애 문제로 교단 내 미국 교회의 4분의 1이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교단의 예산안이 40년 전으로 후퇴한 현실을 마주한 교단과 산하 교회들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연합감리교뉴스(UM News)가 25일(현지 시간) 보도한 데 따르면 총회 예산은 각 연회에 배분되고 연회는 다시 개교회에 선교분담금으로 배당된다. 미국 연회의 선교분담금은 세계봉사기금, 아프리카대학기금, 흑인대학기금, 감독실기금, 교회연합사업협력기금, 교역장양성기금, 총회행정기금 등 7개 기금으로 나뉜다. 결국, 교단 예산의 대폭 감소로 이런 기금 지원이 줄어들면 각종 정책 수행과 선교활동 전반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UMC 총회가 꺼내 든 카드가 감독 수 축소다. 지난 2016년 정기총회에서는 미국 내 46명 등 총 66명의 감독을 지원하는 예산이 편성됐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선 미국 내 32명을 포함해 총 54명의 감독을 지원하는 것으로 줄었다. 감독실 기금이 대폭 삭감되면서 올해 실시하려던 감독선거도 하지 못하는 형편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2016년 이후 8년 만에 열린 UMC 정기총회에 참석한 총회 대의원들을 기다린 건 40년 만에 최저 예산이라는 냉정한 현실이다. 이는 예산의 감축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동성애 이슈로 7,600여 교회가 교단을 떠난 현실을 수치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차기 총감독회장인 트레이시 말론 감독은 “총회가 교회에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라며 “교인 감소와 교단의 현 재정 상태가 앞으로의 사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란 UMC가 더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교단 차원의 사역을 지원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교회가 교단을 더이상 희망적인 울타리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총회와 소속교회 간의 유기적 신뢰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지난 23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컨벤션센터에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10) 주제로 개회된 UMC 총회는 5월 3일까지 11일간 이어지게 된다. 통상 4년마다 열리는 UMC 정기총회가 8년 만에 열리게 된 건 코로나19의 여파 때문이다. 2020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총회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열지 못하게 되면서 그 후 세 차례나 연기된 끝에 올해 개최됐다. 이번 총회의 공식 명칭이 ‘2020 총회(General nference)’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총회가 지연되는 동안 UMC는 커다란 내홍에 휩싸였다. 교단을 주도하는 진영이 친 동성애적 행보를 거듭하면서 지난 4년여간 7,600여 개 교회가 교단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것이 UMC가 최악의 재정 성적표를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다.
동성애 이슈는 UMC에 속한 한인교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미국교회 대의원 482명 중 한인교회 대의원은 8명이다. 그런데 그중 2명이 교단을 탈퇴해 대의원 수가 6명으로 줄었다. UMC에 속한 한인교회가 동성애 이슈에 동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UMC 소속 한인교회 목회자들이 총회 직전에 발표한 ‘공동목회서신’에서도 그런 기류가 감지된다. 이들은 “이번 총회를 바라보면서 전통적인 신앙관을 가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성도들이 갖는 질문이 있다”며 “그것은 ‘우리가 연합감리교단에 남아 현재의 전통적 신앙을 지키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라고 했다.
한인 목회자들이 언급한 ‘전통적 신앙’이란 동성애 등 성(性)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말한다. 성 문제에 있어 교단의 입장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우려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문제로 수년간 갈등하면서 이미 7,600여 교회가 교단을 떠났지만, 교단이 어느 방향에 서느냐에 따라 이탈이 가속화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28일 열린 UMC 총회는 “성적지향이나 성 정체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 자유, 보호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각 소위에서 압도적인 다수로 통과된 ‘우선 처리 안건’에 올라온 다른 9개의 법안과 함께 92%의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투표로 통과시켰다고 한다.
UMC가 개인의 성 정체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에 이번 주 전체회의에 “동성애 실천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다”라고 한 52년 된 규정을 삭제하는 안건까지 통과될 경우 산하 교회의 동요와 갈등이 다시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동성애 이슈로 7,600여 교회가 UMC를 떠났다고는 하나 아직도 많은 교회가 보수적 성경관을 유지한 채 교단에 남아있다. 이들 가운데는 한인교회 수도 적지 않다. 이 교회들은 이번 UMC 총회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그 변곡점이 이번 UMC 총회에 달려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