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북한의 만연한 인권 역행 상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지난 22일(현지시각) 미 국무부가 발간한 ‘2023 국가별 인권 보고서’엔 북한 정권이 자의적 또는 정치적 처형을 자행하는 등 인권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수많은 사례가 적시됐다.
미 국무부 인권 보고서는 매년 각 나라의 인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변화 여부를 평가해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 바이든 정부 들어서만 네 번째 인권보고서다. 그런 인권 보고서가 내린 결론이 북한의 인권 상황이 전년에 비해 개선된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개선이 안 되고 있다는 평가는 실제론 시간이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미 국무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이런 평가를 한 근거가 한두 가지 사안이 아니다. 우선 코로나19 팬데믹 때 시작한 국경 봉쇄를 해제하면서 다시 시작된 강제북송 문제를 구체적인 사례로 들었다. 이를 계기로 자의적 또는 불법적인 살인, 납치, 고문이나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처벌 등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정부에 의한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살해 △강제 실종 △당국에 의한 고문 및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모멸적인 대우와 처벌 △정치범수용소를 포함한 가혹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수감 환경 △자의적 체포 및 구금 등을 북한 인권의 중대한 문제로 꼽았다.
여기에 △사법 독립 부재 △개인이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범죄에 대한 가족 구성원 처벌 △평화 집회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실질적인 간섭 △독립적인 국내 인권 단체의 금지와 국제 인권 단체에 대한 접근의 완전한 거부 △종교적 자유에 가혹한 제한 △심각한 정부 부패 △국가내 이동과 거주의 자유 및 국가를 떠날 권리에 대한 심각한 제한 △인신매매 △아동노동 등도 포함됐다.
보고서는 ‘비사법적 사형’과 관련해 탈북자들과 비정부기구(NGO), UN보고서 등을 토대로 북한 정권이 정치범과 탈북자 등에 대해 마구잡이로 사형을 집행하고 있는 점을 고발했다. ‘비사법적 사형’이란 재판 절차 없이 자의적 판단만으로 총살에 처하는 사례를 뜻한다.
지난 3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 보고서는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일부 사람들과 해외로 탈출한 후 강제 송환된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즉결 처형됐다고 기록했다. 국가가 국민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하는 최소한의 조력이 재판이란 점에서 이런 과정을 생략한 즉결 처형은 북한이 국가가 아닌 독재자 개인을 숭배하는 비정상적인 체제의 전형임을 말해준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한해동안 정부 또는 그 대리인이 초법적 살인을 포함해 자의적이고 불법적인 살인을 저질렀다는 수많은 보고가 있었다”며 그 대상이 정치범과 정적, 강제송환된 탈북자, 공직자, 어린이, 임산부 등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 예로 지난 2022년 말 남한의 영화를 보고 배포한 10대 청소년 2명을 공개 처형한 사실을 언급했다. 민간인에게 공개 처형 현장을 참관하도록 강제하고 특히 북한 어린이들을 학교 현장 학습의 일환으로 공개 처형을 참관토록 한다는 게 탈북민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북한 당국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주민들의 가슴에 ‘공포’를 심어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고서는 교도소 등 수감시설 내에서 벌어지는 여성 수감자에 대한 성폭행과 성적 학대도 고발했다. 여성에 대한 성폭행이 만연하고 있다는 건데 이렇게 된 원인이 북한 당국이 이를 자행하는 남성 교도관의 비이성적 행위를 사실상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폭압자와 그를 추종하는 이들의 손에 들린 비인간적인 폭력의 또 다른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보고서는 정치범과 수감자의 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확실한 정보는 없지만, “추정치는 8~12만명 사이”라며 북한 관련 NGO단체들이 제시한 20만명 내외의 수치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수감자 대부분이 종신형을 받고 가족 3대가 포함된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보통 정치범이란 권력에 반기를 들고 도전하는 세력에 가담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북한에서 정치범 대상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행위는 물론, 김일성·김정일의 사진이 있는 신문을 깔고 앉거나, 김씨 일가의 사진을 훼손하는 경우도 해당한다는 것이다. 21세기에 북한에서 벌어지는 이런 반인권 상황이 황당하다가도 그런 체제 속에서 죽을 때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북한 주민을 생각하면 가슴이 멘다.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주시하는 북한의 인권 상황은 미·북 관계 개선은 물론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지를 더 좁게 만들 것이다.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또한 더욱 견고해질 수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에겐 ‘대외 리스크’에 따른 돌파구를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북한의 인권 상황이 앞으로 나아질 여지는 없어 보인다. 북한 김정은은 주민에 대해 반인권적 폭압을 가하는 방법만이 지금의 불안한 3대 세습 독재체제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독재자는 있었고, 그들의 수명 또한 길지 않았다는 걸 역사가 말해준다. 북한 김정은의 폭압이 극에 달할수록 말로(末路)의 시간 또한 앞당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