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변화하는 신앙이다. 기독교는 개혁하는 신앙이다. 자신을 변화하고 개혁하는 신앙이 기독교이다. 교회와 성도들이 칭의에 머물러 있다. 하나님의 양자로 불러주신 그날에만 머물러 있다. 일방적인 은혜로 신분을 양자로 바꾸어 주었는데, 십자가의 사랑으로 의롭게 칭해 주었는데 양자답게 살아가지 않는다. 양자의 신분을 갖고 불순종의 자식으로, 거짓의 자식으로, 외식하는 자로, 불의로 경건치 않은 자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로, 율법에 매인 자로,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자로,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자로, 죄의 종노릇 하는 자로 살아간다. 양자는 양자로 살아갈 때 양자가 되는 것이다.
김경민 – 다시 믿음으로
모든 온전한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 관계를 위해 몇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유를 일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약속을 한 후로 하나님의 자유는 이 약속에 의해 엄격히 제한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행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자유는 세상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자유다. 하나님의 질문은 앞서 언급된 목적에 따라 하나님이 심판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이에 백성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미리 결정했고, 이제 문제는 그 결정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과 실행 사이의 시차는 하나님의 우유부단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의사 결정 과정을 백성과 공유하고 그들의 반응에 따라 결말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최종 결정을 미루는 것은 하나님이 결단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결정이 공유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떠나가는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의 구원을 향한 그분의 뜻은 그대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임재는 그 강도가 약해지지만,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임재는 비록 백성의 눈에는 숨겨져 보이지 않을지라도 세상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테렌스 E. 프레타임 –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고통
밤새 내린 문이 쌓인 하얀 아침 하늘은 맑고 동녘엔 해가 뜨고 잠 깬 새들 눈 쌓인 겨울 아침을 난다. 눈을 치우려는 순간 눈길을 걸어간 고양이 한 마리 발자국 먹을 것 없는 이 겨울 몹시 추웠겠다. 잎사귀 모두 떨어져 쓸쓸한 은행나무 낙엽 위 쌓인 눈을 치운다. 눈부시다 그 하얀 독백 마음속 쌓인 하얀 고독 내 시의 눈금이 온 누리 가득하다. 겨울 사진 몇 장 찍어 보내는 겨울 풍경 속 하얀 새의 눈빛이 빛난다 생각 속 하얀 겨울 살아 있음이 행복한 이 아침내 죄의 모든 것을 쓸고 있다. 지나온 시간의 눈물이 녹는다. 포근한 안식 속 오늘이 열린다.
임승천 – 삶의 바다로 떠나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