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창세기 1장을 현대 자연과학의 논리로 해석하면 안 된다. 성경은 자연과학이 발아(發芽)하기 수천년 전, 약 1600년에 걸쳐 모든 역사 속 지식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류를 위해 하나님 계시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근대과학은 주후 16C 시작되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은 겨우 1859년 <종의 기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과학으로 수천 년 전 계시된 책을, 그것도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를 평가하고 수정한다면 성경은 과학자 숫자만큼이나 늘 수정가능한 찢어 발겨져버린 책이 될 것이다. 컬럼비아대 출신 생화학자(의대 교수)로 자칭 최고 천재였던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 같은 사람도 기고만장하여 믿음 없이 창세기 해석을 하지 않았던가!
왜 이것이 문제인지, 계시로서의 성경 언어와 성경 해석의 원리를 바탕으로 살펴보자.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의 언어는 달랐다
히브리 성경 이전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인류 최초의 언어는?
언어는 어디서 왔을까? 성경은 에덴 동산에 이미 아담과 하와에게 계시된 언어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렇다면 성경 토라의 언어(히브리어) 이전에도 문자가 있었을 것 아닌가? 그렇다. 인류가 지금까지 확인한 가장 오래된 문자와 언어로는 히브리어 이전 수메르의 설형문자(쐐기문자)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있었다. 이 가운데 세계 최초의 문자 발명 증거가 노출된 곳은 고대 수메르 도시 우륵(현재의 Warka; 성경에서는 Erech, 창 10:10)이었다.
물론 이 학문적 성과가 곧바로 최초의 인류 문명 언어를 찾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고고학자와 언어학자들이 수고하고 추적해 발견해 낸 현재의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의 언어는 달랐는가?
노아와 그 가족이 쓰던 언어와 글의 원형이 무엇이고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는 증거는 성경을 포함하여 오늘날 전혀 추적이 가능하지 않다.
바벨탑 언어 혼잡 사건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명한 사실은 모세 이전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요 이스마엘 후손들의 조상도 되는 아브라함이 히브리어를 창시하지 않았기에 아브라함은 히브리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살았을 것이다.
성경적으로 보면 창세기 대홍수 이후 바벨론에서 언어가 혼잡 된 이래 진정한 언어적 세계 통일은 쉽지 않게 되었다(창 11:9). 창조주 하나님이 직접 온 땅의 인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아와 아브라함의 언어는 이렇게 바벨탑 언어 혼잡 사건으로 갈라 졌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분명 히브리어가 아닌 자신의 고향 메소포타미아 하류 갈대아 우르에서 통용되던 언어에 능숙했을 것이다. 그곳은 바로 '쐐기문자(cunéiform)'가 통용되던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주전 3000~4000년 사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계곡에 도시들을 구축하면서 이 문자를 창안했다고 알려진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그곳의 문화와 우상에 젖어 바로 이 최초 문자의 영역 속에 있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 학생들이 기억해야 하는 문자는 600 여개였고 단어와 음절, 한정사를 모두 포함하면 166-188개의 글자에 달하였다.
모세 이전 창조 계시가 없었다고 볼 수 없기에, 알파벳 이전 이 쐐기문자의 한계와 우상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은 창조 계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손 모세와 그 백성들이 400여 년간 하층 생활을 영위하던 이집트의 상형 문자는 오히려 어린아이들이 익혀야 하는 상형문자가 100여 개밖에 되지 않을 만큼 어휘가 풍부한 문자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렇게 언어의 부침을 겪었다. 그리고 이집트 상형문자는 분명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설형문자보다 풍부한 어휘를 가진 문자는 아니었다. 즉 언어의 엔트로피는 오히려 아브라함 후손들 속에서 증가하였다.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아브라함 후손들이 처한 환경과 문화 코드 속에서 점점 더 그 명료함을 상실해 갔다.
더구나 아브라함이 사용하던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의 설형문자와 모세가 사용하던 애굽의 상형문자는 모든 면에서 전혀 달랐다. 즉 모세와 아브라함은 다른 언어로 창조 계시를 받았던 것이다.
창조 계시 보존의 험난한 과정
이렇게 아브라함 이후 야곱의 후손들은 그들 선조들의 본향이었던 메소포타미아보다도 언어적으로 더 낙후된 환경 속에서 종교와 문화적 향유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이방인이요 노예로 살았다.
이 같은 이방인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야곱의 후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희미한 창조 계시를 보존해왔다고 볼 수 있다.
즉 창조 계시는 “아담과 하와의 언어”-> “노아 가족 언어”-> 홍수 이후 “바벨탑 혼잡 언어” 속 보존-> 인류 최초 등장한 비 알파벳 문자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의 쐐기문자(일명 설형문자) 아래 다른 신들(우상들, 수 24:2)을 섬기던 아브라함 조상(아버지 데라 등) 속의 계시 보존(?)-> 하나님의 친구가 된 아브라함(대하 20:7)의 언어 환경(수메르어?) 속 보존(?)->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 후손들의 이집트 상형 문자와 언어 속 보존(?)-> 출애굽한 “모세 집단”의 언어(히브리어의 잉태 시기?) 속 보존-> 출애굽 광야 속 알파벳 셈족어에서 파생된 초기 히브리 언어 등장(“토라 생성 시기”)-> 현대 히브리어에 보존-> 성경 원본 상실 -> 다양한 사본(寫本) 속 보존 -> “다양한 역본(譯本)들 속의 보존”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생각보다 단순 명료한 창조 계시(창세기 1-11장)가 지난(至難)한 과정을 겪어온 셈이다.
첫 알파벳의 등장
설형 문자와 상형 문자를 거쳐 역사적으로 흔적이 나타나는 확실한 첫 번째 알파벳은 주전 14세기 나타난 우가리트 알파벳이었다. 현재의 시리아에서 발굴된 이 가나안 셈어군은 문자 모양은 쐐기형이었으나 모양만 닮았을 뿐 모음과 자음의 음가를 가진 알파벳 글자의 원형(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우가리트 알파벳이 수메르-아카디아 철자들에서 파생되어 출현한 알파벳인 반면, 비슷한 시기 이집트 상형 문자로부터 비롯된 알파벳이 시나이반도에 나타났다.
이집트 사람들은 한 문자가 한 단일 자음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한 글자가 한 자음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알파벳의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귀족들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알파벳 체계를 채택하지는 않았다.
한글을 창안 한 이후에도 여전히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이 복잡한 한문을 선호하던 것과 유사하다.
반면, 원시나이어(원셈어) 알파벳으로 불리는 이 알파벳이 바로 가나안, 페니키아, 아람, 그리스 문자들과 고대 히브리어로 발전된 원시 문자였으니 이 알파벳에서 라틴어와 에트루리아어를 거쳐 현재 유럽의 알파벳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셈어의 원형은 시나이반도에서 파생되었다.
히브리 알파벳의 원형을 가진 창세기와 토라의 탄생
이렇게 문자가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면 알파벳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자를 융합하면서 시나이반도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겠다.
모세(애굽 탈출 시대)와 다윗 시대(가나안 입성 시대) 사이에 히브리인들은 자신들만의 히브리어를 구축해 가면서 원셈어와 여기서 파생된 다른 셈어 문자들의 단어에 담긴 우상 문화 코드들을 구분, 정리하고 히브리 민족에게 계시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기술할 필요가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여기서 비로소 오늘날 인류가 접하는 창세기 1장과 토라가 탄생했다. 이것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온 원시 히브리어 속 보존된 창세기 1장 해석의 딜레마를 만들었다. 즉 딜레마의 원인은 창조주 하나님의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죄악에 물든 인간의 문제였다.
이때는 건전한 자연과학도 진화론도 잉태되지 않은 시기였다. 하나님은 이때 모든 이들에게 적응된 보통언어로 창조와 타락과 홍수 사건을 전하시고 아브라함의 손을 잡고 인류 구원의 여정을 계시하신다.
과학이나 진화론으로 창세기를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
이렇게 하나님은 창세기의 창조 역사에 대해 자연과학이나 진화론적 판단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암묵적으로 인류에게 전하고 있다.
성경은 자연과학이 발아(發芽)하기 수천년 전, 약 1600년에 걸쳐 기록된 책이다. 근대과학은 주후 16C년 시작되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은 겨우 1859년 <종의 기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성경 창조 계시가 과학 시대만을 전제로 준 책은 전혀 아닌 것이다. 과학의 본질과 유용성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창조 계시의 직접적해석 도구는 전혀 아닌 것이다.
창세기 1장은 천문학자들을 위해 주신 책이 아니라 역사 속 모든 인류, 모든 보통사람들을 위해 주신 계시라고 창세기를 주석한 칼빈이 말한 그대로였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인류를 위해 눈 높이를 보통 사람 수준으로 낮추셨다는 이 '적응의 원리'는 종교개혁자들의 성경 해석의 주요 원리였다.
따라서 인간은 과학이나 진화론을 가지고 계시로서의 창세기 창조 사건을 함부로 판단하게 될 때에, 부지불식 간에 자신이 마치 창조주 하나님처럼 창조 사건의 과학적 판단자요 심판자의 위치에 설 수 있음을 늘 경계하고 계시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전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 조직신학)
#조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