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잠적한다”라는 말이 있다. 평소와 달리 일상에서 모습을 감출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약간은 자신의 입장이 곤란하거나 불리할 때 취하는 행동이다. 대체적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긍정적 이미지로 더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규슈 열도는 일본에 처음으로 기독교 선교가 시작된 곳이다. 예수회 선교사 하비에르가 1549년 가고시마에 첫발을 내디딤으로 일본 선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치할 때부터 일본 기독교 선교는 일본의 전통문화와 가치를 헤치는 종교라며 선교사 추방과 26인을 십자가형으로 처형하는 등 박해를 시작했다.
포르투칼어로 그리스도인을 ‘기리스탄’으로 부른다. 본격적인 박해가 일어나자 급기야는 시마바라 번에서 10년간이나 박해받던 무리가 젊은 기독교 전사인 아마쿠사 시로를 앞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3만 7천여 명이 처참하게 전사하고 막부군이 진압에 성공했다. 이 일을 계기로 기리스탄들은 작은 섬들과 오지로 숨어들어 갔다.
대표적인 박해 사건은 당시 교토에서 붙잡은 기리스탄들이 배교하지 않자 엄동설한에 무려 수천 km의 길을 몇 달 동안 여러 도시를 거쳐 끌고 와나가사키가 내려다 보이는 니시자카 언덕에서 십자가에 처형했다. 이 박해 사건은 후일에 순교자로 인정되어 26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지금도 나가사키 일본 26성인 기념관은 이들의 신앙을 기리고 있다.
260년이나 계속 된 박해에도 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지킨 순교자가 30여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1873년 금교령이 공식적으로 철폐 되었다. 이때에 나가사키에 프리탄 신부에 의해 ‘천주당’이 세워지자 그동안 가문 대대로 숨어서 신앙을 지켜온 무리가 나타나 자신들의 신분을 밝혔다. 이 놀라운 사실이 교황청에 보고되어 유럽 일대는 이를 기적이자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를 “기리스탄 재발견”이라고 한단다.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유후인에서도 잠복 기리스탄의 흔적이 남아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오지였던 유후인으로 피난 온 기리스탄들은 마을공동체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결국 발각되어 집단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 그들의 시신이 묻혀있는 초라한 공동묘지가 발견되어 다시금 잠복 기리스탄의 흔적을 찾게 되었다.
잠복 기리스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발전한 신문물이자 서양문화로 전해진 왜래 종교에 매료되어서 인가. 아니면 당시 정치와 경제, 사회상에 불만을 가진 자들의 피난처가 되어서였을까. 아니면 일본인의 심성을 움직이는 탁월한 영성이었을까.
인류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종교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잠복 기리스탄은 유독 일본인들만의 고집스러운 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계승하려는 욕구가 더 강렬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종교현상으로 본다면 종교마다 지니고 있는 공통된 종교의식이나 제사와 기도 등 유사한 요소를 지녔기에 기꺼이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주는 강렬한 메시지는 종교조차 취향이나 가벼운 교양 생활 정도로 여기는 현대인의 생활방식에 대해 진정한 신앙이란 삶 자체이며 보존하고 계승할 만한 가장 고상한 가치를 지닌 영혼의 평화를 주는 목숨만큼이나 고귀한 영성생활이란 것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