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 위임 목사)가 14일 오전 주일예배서 ‘순교가 선교의 문을 열다’(사도행전 7:54-8:3)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 목사는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한가지 질문 앞에 응답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한다. 그 질문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과연 나의 생명과도 바꿀 수 있을만큼 귀중한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고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수고하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자신의 생명에 대한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 속에서 기쁘고 담대하게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겼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축복이 있었기에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이 결코 있을 수 없는 죄임을 알았기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했다.
그는 “사도행전의 역사는 복음이 확산되는 역사이며 그 복음이 확산되는 동시에 일어난 일이 바로 순교의 역사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첫 번째 순교자는 스데반이었다. 스데반은 비범한 인물이었기에,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그런 초월적인 능력을 갖췄기에 순교한 것이 아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는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증인됨을 선택하였기에 순교자의 삶을 선택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그리고 대한민국에 주어진 축복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어떠한 핍박도 주어지지 않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그래서 도리어 우리는 예수님을 순수하게 믿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목사는 “우리의 믿음에는 허용과 위선과 거짓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이 시대에도 예수님을 믿고 예배에 참석하고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어떤 희생이 요구될지라도 믿음의 삶을 우리는 계속 추구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믿음, 교회를 교회답게 이끌어 주었던 것은 순교의 신앙이다. 그리고 이 순교의 삶을 통해 복음이 온 세상에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주어져 있다. 스데반의 삶에는 순교적 삶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다. 어떤 상황 속에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않는 순교의 삶이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스데반이 공회에 잡혀 와서 심문을 받는 장면이 오늘 본문이다”고 했다.
이어 “공회에 잡혀와서 심문을 받고 가장 억울하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음에 이르는 여정 가운데 스데반의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그의 모습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진리를 증거하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진리 앞에서 담대하다. 이는 성령님이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고소당한 이유는 예수님이 고소당한 이유와 같은 신성 모독죄였다. 특히 성전과 율법을 신성모독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하셨던 말씀을 보면 성전을 중심으로 한 사두개인들이 엄청난 종교적 비즈니스를 하는 권력자들에게 엄청난 도전이 되었다. 또한, 구약의 율법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선언했을 때 그것은 율법을 중심으로 한 바리새인들에게 있어 기둥을 흔드는 말씀이었다”고 했다.
이 목사는 “사도행전 7장 전체의 내용은 스데반의 설교가 대부분이다. 오늘 본문은 심문을 당하면서 설교한 내용이다. 심문을 당하는데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그는 구약의 역사를 강의하듯 설교했다. 구약의 짧은 시간 내에 그 흐름을 관통하는 내용을 알기 원하면 사도행전 7장을 읽으면 된다”며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에 이르는 구약의 물줄기의 핵심은 성전을 주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키며 율법을 주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기 위함이며 구약의 모든 것이 가리키고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기 위함이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데반은 예수님을 증거하며 담대하게 진리를 증거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산해드린 공회 앞에서, 대제사장 앞에서 자신의 생명, 육신을 지키고자 노력하지 않으셨고 비굴하지 않으셨고 담대하셨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진실을 증거하셨다”며 “54절을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이라고 되어 있다. 스데반은 이를 갈며 분노하는 이들을 바라보지 않았고 분노하는 자들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봤다. 자기 생명을 지키려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영적 눈을 가질 수가 없다. 이기적인 사람은 이 상황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계시를 바라볼 수 없다. 스데반은 자신의 죽음에 초연했고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봤기 때문에 분노하는 사람들에 의해 휩쓸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 목사는 “성령으로 충만한 나머지 때로 억울하고 답답하고 고통스럽고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상황이지만, 그 모든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그런 영적인 눈을 모두가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며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다. 이를 악물고 참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 너머를 바라보셨기 때문에 고통을 참으신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을 보면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봐야 한다고 되어있다. 예수님은 자기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으며 그 기쁨은 부활의 기쁨, 부활의 영광,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기쁨,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이뤄지는 기쁨이다. 스데반은 그것을 보면서 자신을 대적하는 이들을 보면서 휩쓸리지 않았고 예수님처럼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 가득한 악한 사람들, 거짓에 의지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의 감정이 때로 솟구치며 그들처럼 변해버릴 수 있다. 나쁜 사람들을 욕하다 보면 우리도 같이 나빠지는 것이다. 스데반은 그것을 뛰어넘었으며 그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의 모습인 것이며 스데반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은 예수님을 보여 준 것이다. 죽음이 가까운 상황에서도 스데반을 위해 예수님은 기도하시는 예수님이시다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며 “스데반의 모습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 죽이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놀랍게도 스데반의 마지막 기도에는 예수님의 기도가 두 번 같은 기도가 나온다. 59~60절을 보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을 끝낸 후 그는 잠들었다”고 했다.
이 목사는 “스데반이 순교 직전 했던 마지막 기도는 마치 예수님께서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향해 용서의 기도를 한 것과 같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도 반복하여 용서의 기도를 하셨다. 가상칠언의 기도를 예수님 옆에 매달렸던 강도가 들었다”며 “마땅히 잘못하고 죄를 짓고 마땅한 형벌을 받는데도 억울하고 못 받는 이들이 그렇게 증오하고 싶어 미워하는 이들인데 저들을 용서하는 저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놀랍게도 지금도 믿지않는 많은 이들이 예수라는 분은 누구신가라는 질문만 던져도 성령님이 역사하시며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신다”고 했다.
이어 “용서의 기도는 사람을 구원으로 이끈다.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는 바로 옆에 있던 강도가 구원받는 열매를 맺게 한 것이다. 스데반도 똑같은 용서의 기도를 했다. 예수님과 다르게 스데반은 큰 소리로 기도했다. 그런데 공회에 있던 이들 중 강도처럼 그런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58절을 보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사울은 청년 바울이다. 이는 바울의 예수님을 믿기 전의 모습이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본격적인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하며 바울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사울이 그 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울 안에는 ‘스데반 같은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 목사는 “부활하신 주님이 사울을 부르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은혜로운 선택이었다. 거기에 추가한다면 스데반의 용서의 기도가 응답되어 그 자리에서 가장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던 바울을 부르셔서 사도로 세우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여 드려지는 용서의 기도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룬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서 지금도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의 기도는 용서의 기도이다. 지금도 하나님을 모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해 예수님은 용서의 기도를 끊임없이 드리고 있는 것이다. 스데반이 드린 기도의 응답으로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것처럼 오늘 우리의 용서의 기도로 누군가가 변화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에 주어진 핍박의 신호탄이었다.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흩어진 성도들이 복음을 온 세상에 증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증거에는 순교가 있었다. 안드레는 아시아 여러 국가를 다니며 순교했고 베드로는 네로 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 그 외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도 순교했고 희생되었다. 그러나 그 순교자가 나올 때 마다 복음은 더 확산되었다”며 “사도들은 비범하거나 탁월한 어떤 영적 수준이 아니었지만, 모두 예수님을 믿었고 성령안에 있었기에 순교자의 길을 간 것이다. 이런 신앙,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순수한 복음이 우리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고 했다.
끝으로 이 목사는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 우리는 진실 앞에 담대할 수 있다. 자신의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믿음을 택할 수 있다.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을 핍박하는 이들까지 용서함으로 바울을 부르신 주님의 역사가 계속해서 핍박자를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이 이뤄지게 역사하시는 것”이라며 “우리의 삶도 스데반처럼 예수님 닮은 모습이 되길 축원드리며 우리를 통해 복음이 더 확산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