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다 먼저 봄을 맞이한 일본 열도를 오랜만에 방문했다. 후쿠오카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벚꽃이 아직 절반쯤 남아있어 반가웠다. 맨 먼저 찾아본 곳은 일본 문화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다자이후 텐만 구 신사였다. 주말을 맞아 상춘객과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신록의 수목이 우거진 신사의 정원을 지나 신사 앞에서 소원을 비는 일본인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일행은 목적지인 나가사키로 출발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방문한 곳은 일본 개항의 효시라 불리는 나카사키의 외국인 거주지였던 '글로버 가든'이었다. 나카사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잘 가꾸어진 정원 언덕에 있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서양 건물을 그대로 옮겨와 개항기시대상을 보여주는 이색적인 공간이었다. 일행은 발걸음을 옮겨 ‘일본 26성인 기념관’에 당도했다.
“나가사키는 기리시탄(그리스도인) 역사로 시작된 마을이다. 1570년 개항과 더불어 기리시탄 역사와 깊은 관계를 지니며 26성인의 순교는 특히 의미 깊은 사건이다” 이런 문구로 기념관 안내서엔 연혁을 소개했다. 기념관 앞 광장에는 26인성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관 설립 목적문에는 기리스탄 순교역사와 프란치스코 하비엘 선교 도래부터 명치시대까지 기리스탄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 기독교 순교 역사에 큰 감명을 받고 일행은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을 찾았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이 숙연해 졌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자료관 바로 위 상공 450m 지점에서 원자폭탄이 작렬했다. 거리는 대부분 파괴되었고 그 해 말까지 7만여 명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피폭자들은 백혈병과 암, 피부 화상 등으로 일생 동안 치유받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자료관을 돌아보며 그날의 처절했던 순간을 목격해 보았다. 파괴된 도시와 피폭자들의 외관에 입혀진 피폭의 흔적은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상처로 남았다. 그날의 생존자들이 전하는 일기나 서간문으로 남겨진 자료들을 보았다. 가슴 저리게 하는 사연들은 누가 보아도 공감할 수밖에 없으리라. 전시관 중앙에는 원자폭탄 팻맨의 모형이 자리하고 있어 패전의 처참함과 비참함을 더하게 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발발한 대가를 톡톡히 맛보아 알게 되었다.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과 동남아 침략의 결과가 무엇인가. 특히 한국을 식민지화하여 해악을 끼친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고 사죄한 것일까. 원폭자료관을 둘러보며 다시 묻게 되었다.
일본은 다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이를 자랑하지 말고 세계 평화의 중재자가 되어 보라. 이것이 앞서 죽어간 피폭자들의 절규가 아니겠는가. 일본의 후손들은 항상 자각하여 그들의 절규에 답해야 한다. 나가사키는 한 때 평화를 구가하던 개항의 도시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원폭의 상처를 입은 피해도시로서 그 경험을 세계에 알려주는 평화 구축의 주역 도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바는 그날의 상처를 잊어가는 듯 평화로운 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나가사키를 바라보며 일말의 노파심을 가지게 되었다. 피폭의 역사와 상처가 후대들에게 잊힌다면 어찌 될까. 필자는 잘 가꾼 자연경관을 가진 나카사키가 영구적인 평화의 봄으로 지속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