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방에서 “자아에 충실하라”, “내면에서 답을 찾으라”, ”자신의 마음을 따르라” 같은 그럴듯한 메시지가 우리에게 날아든다. ‘자아’를 찬미하고 신으로 숭배하는 정신이 사회 곳곳에는 물론, 위로와 격려, 관용이라는 교묘한 가면을 쓴 채 교회 안에도 만연하다. 그러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자기 행복을 첫자리에 둘 때 돌아온 것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외로움과 우울과 불안뿐이었다. 타락한 내 마음은 반드시 나를 배신하기 때문이다.
저자 사디어스 윌리엄스 교수(탈봇신학교 조직신학 조교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을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자기 마음’의 노예로 사는 현주소를 냉철하게 진단하며 현대사회 주류 인생관을 일군 다양한 사상가들의 문화 형성 과정을 추적하고, 흠뻑 젖어 사는 이 문화와 세계관의 바다를 분별하게 도와준다.
저자는 책 속에서 “우리는 현시대를 살고 있을까, 아니면 오는 시대를 살고 있을까? 이에 성경은 둘 다라고 답한다. 벤다이어그램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두 시대의 원이 서로 겹쳐지는 교집합 부분에서 살고 있다. 그 둘이 동시에 우리 마음을 얻고자 치열하게 싸우며, 무한한 우주적 규모의 전쟁에서 매 순간 맞붙는다. 날마다 하루에도 수만 번씩 우리는 어느 시대에 마음을 두고 어느 나라와 어느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할지를 선택한다. 우리의 왕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딤전 6:15)이신 예수님인가, 아니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가? 결국 자아를 숭배하라는 뱀의 거짓말도 당연히 패한다”고 했다.
이어 “마음을 따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내 마음처럼 당신의 마음 역시 우둔할 뿐 아니라 너무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은 정처 없이 왔다 갔다 흔들리고 요동친다. 정체성을 떠받칠 견고한 반석이기보다 푹푹 꺼지는 모래와 같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물은 늘 흐르는지라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 마음도 이처럼 늘 출렁인다. 우기의 갠지스강처럼 휘몰아치며 흐르는 마음도 있고 추운 날의 당밀처럼 이동이 더딘 마음도 있겠지만,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만은 모든 사람이 똑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에 비할 수 없이 불안정하고 못 미더울 뿐 아니라 서로 모순되는 말로 가득하다. 마음을 따르라는 교리는 순진하게도 우리 마음이 합창단 같다고 전제한다. 각기 다른 감정이 다른 모든 감정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사실 마음은 합창단보다 악기점의 시연장에 더 가깝다. 고객 50명이 각기 다른 기타와 앰프로 일제히 서로 더 크게 연주하려는 것처럼 말이다”며 “그분은 우리를 그보다 훨씬 나은 모험으로 부르신다. 일상생활의 단조로운 현실을 늘 피하려 드는 마약중독자처럼 되게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분은 몸으로 죽으시고 몸으로 부활하여 영혼과 육체까지 우리의 모든 것을 구원하신다. 우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게 아니라 친히 우리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오신다. 우리가 잘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지 그분은 평범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신다. 우리가 사회적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에게 그분에 대해 말해 줄 때 그분이 어둠의 세력을 퇴각시키신다. 우리가 가구를 옮기고, 기저귀를 갈고, 설거지하고, 모욕을 견디고, 불편한 아웃사이더를 반기고, 때맞는 농담으로 답답한 분위기를 깨고, 음식점 종업원을 음식이라는 목적의 수단 이상으로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표현으로 ‘소소하고 멋없는 수많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또 희생할’ 때, 우리는 영원을 건 모험에 오른다. 말로 복음을 전하고 매일의 행실로 그대로 실천할 때 우리는 프로도와 샘처럼 운명의 산에 반지를 던지고, 루크 스카이워커처럼 데스 스타의 배기구 속으로 양자 어뢰를 발사하고, 해리 포터 일행처럼 호크룩스를 파괴한다. 일상생활에 영원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영원한 존재이기에 영원히 계속되는 진정한 모험에 합류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