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회장 김현광)가 최근 충현교회(담임 한규삼 목사)에서 제79차 정기논문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충재 박사(백석대)가 ‘교회, 택함 받은 자들의 공동체, 마태복음 내러티브 속에서 찾아보는 교회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고, 김지은 박사(횃불트리니티신대)가 논평했다. 이어 ▲김진미 박사(아신대)가 ‘히 4:12-13의 ὁ λόγος와 전쟁-안식-제의 모티프’라는 주제로 자유발표를 하고, 조재형 박사(강서대)가 논평했다.
◆ 교회란 무엇인가? 마태복음 16장 18절의 두 가지 측면
이충재 박사는 “교회란 무엇인가”라며 “수많은 연구자들이 교회가 무엇인지 배우기 위해 가장 먼저 살펴보았던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예수님이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돌이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처음 세우는 곳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장면의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해보면 먼저, 한글 성경이 ‘교회’라고 번역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의 의미”라며 “대부분 이 헬라어 단어 에클레시아를 어떤 특별한 성격 없는 모임, 회중, 공동체를 나타내는 단어로 설명한다. 하지만 과연 예수님이 자신의 교회를 세우면서 특별한 성격 혹은 함의 없는 이름을 붙여 불렀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왜냐하면 비교적 최근의 중요한 성경 헬라어 사전들은 에클레시아의 공시적 의미와 어원적 의미를 연구하여 그것의 특별한 성격 혹은 함의를 찾아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불어 “헬라어 에클레시아가 ‘택함 받아 특별한 권세를 누리는 회중’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는 것을 제시한다”며 “그리고 예수님이 세우는 에클레시아가 이 사전들의 연구와 일맥하게 ‘하나님과 예수님의 주권적 은혜로 택함 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백성이 되고 그 나라의 특별한 시민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제시한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둘째로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는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는 마태복음의 문맥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교회를 세운다”며 “하지만, 그 이전에 아무런 준비나 일련의 과정 없이 갑자기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17절부터 공생애 사역을 시작한다”고 했다.
이어 “마태복음 16장 18절에 이르러서 지난 공생애 사역을 통해 부른 제자들을 교회로 세운다. 즉,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17절부터 에클레시아를 세우기 시작하고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드디어 교회 세운다”며 “이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마태복음의 넓은 문맥을 살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의 넓은 문맥을 살펴보아 예수님이 세우는 에클레시아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이 그 옳은 뜻 가운데 택한 자들에게 계시를 주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게 하고 그 부름 대로 돌이켜 자신을 따르는 제자를 삼아 그들을 중심으로 세우는 것임을 설명한다”며 “그리고 이 넓은 문맥이 담고 있는 에클레시아의 의미는 앞서 언급한 헬라어 에클레시아의 공시적 어원적 의미와 일치한다는 것을 제시한다”고 했다.
더불어 “헬라어 에클레시아의 공시적 어원적 의미와 예수님이 에클레시아를 세우는 마태복음의 문맥 연구를 통해 교회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의 옳은 뜻 가운데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주권적으로 주어지는 신적 계시를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로 알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부름 대로 돌이켜 그를 따르는 제자이자 하늘나라 백성이 되어 그 나라의 시민 된 특별한 복과 권세를 누리는 공동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 에클레시아, ‘택함 받아 특별한 권세 누리는 회중’ 의미
그는 “여러 헬라어 사전들이 보여주듯이 에클레시아에 대한 공시적이고 어원적인 연구는 그것이 단순한 ‘회중’이라는 의미를 넘어 ‘택함 받아 특별한 권세를 누리는 회중’을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5절–27절과 16장 15절–18절에서 두 번이나 반복하여 에클레시아로 세워지는 제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특별한 시민권을 얻은 자들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그 모든 의미를 담아 제자 공동체를 에클레시아로 불러 세운다”고 했다.
이어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는 공생애 사역의 넓은 문맥은 이 에클레시아의 의미와 일치한다”며 “예수님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돌이키라 전파하며 권능을 베풀고 택한 자들에게 계시를 주어 자신을 그리스도로 알게 하여 돌이키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사역을 펼치셨다”고 했다.
또한 “예수님의 전반기 사역의 내용은 하늘나라의 도래에 따른 돌이킴의 말씀 전파(마 4:17–8:1), 돌이킴을 위한 권능 행함(마 8–9장), 패역한 자들에게 자신을 숨기고 택한 자들에게는 한정적으로 계시를 주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알게 하고 돌이켜제자 삼음(마11–12장), 계시를 얻어 돌이킨 제자들을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시민권을 베푸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마14–16장)”고 했다.
이 박사는 “예수님은 자신의 이 모든 사역의 내용을 ‘택함 받아 특별한 권세를 소유하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에클레시아에 담았다”며 “예수님은 세상 모든 인간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심판으로 받아 들고 그들의 능력으로는 결코 이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었을 때,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주권자로서 택한 자를 불러 계시를 주고 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돌이키고 죄를 사하여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였다고 밝힌다”고 했다.
아울러 “이 헬라어 에클레시아를 번역하는 교회는 이 놀라운 선택과 계시와 돌이킴을 통한 구원의 은혜와 하늘나라 시민권의 축복을 모두 담고 있는 이름”이라고 했다.
이에 논평을 한 김지은 박사는 “저자의 방법론은 에클레시아의 객관적 의미망을 고찰하고 그것이 마태복음 16장 18절을 둘러싸고 어떻게 나타나는지 조명해간다는 점에서 새로운 느낌을 주면서도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며 “‘에클레시아’라는 렌즈를 가지고 마태복음 본문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본문이 에클레시아의 의미를 어떻게 확정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 이 과정이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 않다. 오히려 저자의 논지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에클레시아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이끌어 간다”고 했다.
김 박사는 “에클레시아가 가진 원래의 ‘선택’이란 뜻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택함이라는 맥락에서 극대화되어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를 확실하게 해 주었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면 좀 더 명확한 공시적 어원적 의미의 연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고 했다.
◆ 히 4:12-13의 ὁ λόγος와 전쟁-안식-제의 모티프에 대한 고찰
이어서 마지막 두 번째로 발제한 김진미 박사는 “히브리서 저자가 유대 문헌이 보여주는 일련의 패턴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히 4:12-13의 ὁ λόγος에 함의된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며 “히 4:12-13의 두 개의 λόγος를 아들 예수의 활동으로 해석할 때 저자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히 3:7-11)는 권면에 이어 ‘살아 있고’(Ζῶν)라는 인격적인 말씀으로의 새로운 여호수아에 대한 묘사는 히브리서 전체의 논리와 가장 조화롭게 연결된다”고 했다.
김 박사는 “히 4:12-13은 단순한 심판의 문맥이 아니다. 4장에 이어지는 대제사장(히 4:14-5:10)에 관한 논의는 별도의 구분된 단락도 아니”라며 “예수의 전쟁 이미지(히 4:12-13) 이후 대제사장으로의 등극(히 4:14-15)과 함께 속죄 제의(히 5:1-10)에 관한 서술로 이어지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전쟁(등극)-안식-제의’라는 선행하는 전통 가운데서 묘사되고 있음을 발견한다”고 했다.
이어 “새로운 여호수아의 전투(히 4:12-13)는 현재의 악한 세대를 지배하는 세력이 참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열거한다”며 “이러한 읽기는 4장에서 λόγος의 전쟁 활동의 효력에 이어 수신자들의 더디 깨닫는 현재적 상황에 따른 강한 경고의 메시지가 이어지는 5:11-6:8과의 연결성을 보다 분명하게 해준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히브리서에 등장하는 제의적 모티프가 죄용서와 관련할 뿐만 아니라 대적에 대한 승리로서 이러한 두 가지 개념은 하나의 이야기임을 다시 확인한다”며 “두 개념이 각각 독립된 모티프로서 기독론적, 구원론적인 함의를 갖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구약과 제2성전기 문헌에서 두 개의 모티프는 서로 연결된 하나의 패턴으로 해석되는 전통을 발견한다. 이것은 히브리서에 나타난 속죄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논평한 조재형 박사는 “히브리서의 예수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는 기존 교계의 이해를 전쟁-안식-제의 주제로 확장해서, 히브리서 4:12-13의 ‘로고스’가 성육신한 이후 예수의 활동이라는 참신한 해석을 제시한다”고 했다.
조 박사는 “히브리서의 독자와 저자의 정황을 조금이라도 설명한다면 4:12-13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거꾸로 이 논문에서의 논의를 통해 저자와 공동체와 기록연대에 관한 새로운 실마리를 제시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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