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도서에 음란성 표현이 넘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으나 이를 바로 잡아야 할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오히려 방조하는 듯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유해 도서들이 전국 초중고 도서관에 버젓이 비치되고 있는 것도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문제다.
전국 17개 지역 71개 학부모 단체들이 참여하는 ‘세종 청소년유해환경개선단’은 지난 25일 세종시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음란유해도서를 편파적으로 심의한 간행물윤리위원회를 규탄했다. 이들은 음란 유해 도서로 지목해 심의를 요청한 66권 가운데 간행물윤리위가 11권만 심의하고 이마저도 모두 ‘불문’ 즉 청소년 유해 도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을 비분강개하게 만든 건 간행물윤리위원회의 문제의식 결여다. 지난해 10월 10일 전국 학부모단체 대표 32인이 음란성 유해 도서에 심의를 청구했으나, 간행물윤리위는 ‘출판의 자유’를 거론하며 심의 집행을 거부하는 등 차일피일 미뤄왔다는 것. 그러다가 법제처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하고 올 2월에 학부모단체 대표들이 계속해서 민원을 제기하자 마지못해 66권 중 11권만 심의하고는 모두 문제가 없다고 판정했다는 것이다.
심의 대상으로 지목된 성교육 도서는 성행위의 방법, 감정, 음성을 매우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등 선정성을 넘어 음란성 표현이 가득하다는 게 학부모단체의 지적이다. 이미 청소년 유해 도서로 판정된 도서 못지않게 심각한 내용이 들어있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 건 심의 기준의 일관성에서도 벗어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청소년보호법 제9조 제1항 제1호 및 동법 시행령 제9조에는 유해 도서 판정의 기준을 ‘성행위와 관련하여 그 방법, 감정, 음성 등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으로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간행물윤리위가 성행위의 방법, 감정, 음성을 매우 노골적으로 묘사한 11권의 도서에 대해 유해성이 없다고 했으니 사실상 음란성 유해 도서 전체에 면죄부를 준 꼴이다.
성교육 활용도서의 과도한 선정성 논란은 경기도의회에서도 나왔다. 지난 25일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인애 도의원은 간행물윤리위원회가 학부모와 시민단체가 문제 제기한 초·중·고 성교육 도서들 66권 가운데 11권만 심의하고 모두 유해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 “누구를 위한 결론이냐”고 따졌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아이들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음란 표현이 들어가 있는 도서를 성교육 도서라는 미명 하에 방치하고 있는 것이 올바른 교육인지 되묻고 싶다”며 “이런 결과에 대해 아무런 의견조차 내지 않는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의 방관 또한 문제”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문제는 지난 20일 열린 서울시의회 정례회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혜영 국민의힘 시의원이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상대로 한 시정 질문에서 성교육 교재의 탈을 쓴 소위 ‘음란도서’들이 서울 관내 학교도서관 및 공공도서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며 해당 도서들을 즉각 폐기조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
김 의원이 음란도서로 지목한 책 중에는 ‘스리썸’ 등 포르노 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낯뜨거운 단어를 소개하거나 동물과의 성관계, 서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행위를 다양한 성적 욕망 중 하나라고 서술한 책도 있어 성인이 봐도 충격적이다. 심각한 건 이런 음란성 성행위를 묘사한 해당 도서 4권이 총 217곳의 초·중·고 학교 도서관에 버젓이 비치돼있다는 사실이다. 김 의원은 “문제의 도서들이 중·고등학교에 비치되는 것도 문제지만, 특히 이 중 56권은 초등학교에 비치돼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런데 더 납득이 안 되는 건 해당 도서들이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책들이라는 사실이다. 학교 도서관에 구비할 도서를 심사하는 운영위원회가 어떤 기준으로 선별했기에 이런 음란도서가 초중고교 도서관 서고에 버젓이 꽂힐 수 있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학교도서관 운영위원회와 서울시교육청의 직무 유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답변에서 “오늘 소개한 책들은 제가 봐도 분명 교육적 교재로 삼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교육청 차원에서 학교도서관내 해당 책들 비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방침을 세울지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도서가 선정성을 넘어 음란성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건 매우 심각하다. 아직 성에 대한 인식이 완전하게 형성되지 못한 아동들에게 성에 대한 왜곡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이는 곧 인격 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자녀가 아동 청소년 시기에 그런 음란도서를 손쉽게 접하는 데도 그냥 내버려 둘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간행물윤리위는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아동·청소년들에게 음란도서가 노출되도록 여태껏 방기해 왔다. 그렇다면 이건 또 다른 폭력의 문제다.
학교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이런 음란도서가 무방비 노출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특히 초중고교 학교도서관에까지 들어가 있는 음란도서에 대해서는 즉시 열람 제한 조치하고, 전량 회수해야 마땅하다.
성교육은 과거와 같이 숨어서 몰래 하는 부끄러운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교육을 빙자한 음란물의 무분별한 노출은 분명 선을 넘은 것이다. 아이들의 건전한 성적 가치관 형성을 가로막고 왜곡된 성인식을 주입하는 것만큼 큰 해악도 없다. 간행물윤리위와 학교도서관운영위가 각성하고 유념해야 할 분명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