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교회(담임 최성은 목사)가 25일부터 오는 31일까지 고난주간을 맞이해 특별새벽기도회를 개최한다. 기도회 첫날인 25일 최성은 목사가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마태복음 21:18-22)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최 목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둘러보셨다고 기록하고 있고 마태복음에는 성전 청결 사건, 육신의 질병이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날의 일정을 마치시고 다시 동쪽으로 약 3km 떨어져 있는 베다니로 가셔서 하룻밤을 지내셨다. 그 지역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지역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다”며 “본문 19절을 보면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서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 11장 13절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께서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맺지 않는 것을 보시고 저주를 하셨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분명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 7일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에서 그 가운데 기록된 이 장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께서 보신 무화과나무는 가지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보시면서 저주하신 것이다. 이 사건은 주님께서 방문하신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 있다. 마가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주일에 성전에 들어가셨고 월요일에 다시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성전을 정결케 하셨다. 순서가 어찌 되었건 무화과나무 사건은 성전의 사건 전후에 일어난 것”이라며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비유로 지적하신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몇 가지 교훈들이 있다. 첫째, 이 사건은 하나님의 때의 중요성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계획이었다”고 했다.
최 목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반드시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때를 늦추거나 변경하는 일은 히스기야 왕의 생명이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서 그의 생명을 연장받았다. 또 다른 한 가지 예를 찾아본다면 가나안 정복 시절에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과 전쟁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해를 멈추게 하셨고 밝은 대낮에 아모리 족속을 물리칠 충분한 기회를 주셨다”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분명한 때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완악함에 대해서 오래 참으셨다. 그리고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그들에게 마지막 심판과 구원을 선포해주시는 때가 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활 가운데 메시아 사상을 깨달았으며 메시아가 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메시아를 갈망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아들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들 중 일부는 고의로 하나님과 대적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구원의 첫 번째 기회를 잃어버렸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30년 정도가 지난 A.D 70년에 완전히 멸망하는 무서운 심판을 받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온다. 예수님은 때가 차든 아니든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으시며 반대로 무화과나무를 말라 죽게도 하실 수 있다”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 분별을 갖는다는 것은 특별히 하나님의 때를 아는 것이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 때인가를 잘 분별해야 한다. 고난주간인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이다. 어떤 때보다도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최 목사는 “우리는 때때로 때를 내가 정하려고 한다. 내 고집대로 인생을 정하려고 할 때가 있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맞춰 나아가야 한다. 마치 하나님을 좌지우지하려는 듯한 기도를 마음대로 드리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인생의 때를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따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생의 주관자로서 받아들인다는 신앙이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다면 하나님은 그때를 바꿔주실 수 있다. 그게 하나님 자녀됨의 특권이다”며 “우리의 기도가 선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때를 바꿔주시고 늦춰주시고 빠르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는 마가복음 1장 15절을 보면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이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님은 ‘지금이 구원받을 때’라고 선포하셨다.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말씀 듣는 우리도 그 구원의 때에 포함되는 것”이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생의 때를 거부하지 마시길 바란다. 주가 쓰시겠다고 할 때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때에 순종하는 것이다. 나 같은 자를 쓰시겠다고 하시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고 했다.
최 목사는 “무화과나무의 저주가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 아들의 때를 거부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상징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의 삶의 열매에 중요성을 가르친다. 예수님은 가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때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때에 순종할 때 열매가 따라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순종은 열매를 맺는 굉장히 중요한 열쇠다”며 “예수님은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셨지만, 그들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며 마치 그들이 마른 가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열매가 없는 모습을 보셨다. 그들의 예배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만족을 채우는 예배였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은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누구에게나 주신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열매 맺는 비결은 요한복음 말씀처럼 가지이신 예수님께 단순히 붙어있는 것이다. 그러면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게 되어있다. 하나님을 농부, 예수님을 포도나무, 우리의 인생을 가지에 비유한다면 예수님께 붙어있지 않는 가지, 나무는 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를 붙들고 어디를 향해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가 주님을 떠나있으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열매가 맺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람쥐가 챗바퀴 돌 듯이 무엇인가 진전없는 인생을 산다면 우울함이 오는 것이다. 열매가 없으므로 내 삶 가운데 허망함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열매를 맺는 인생은 그게 작은 열매일지라도 마음 가운데 기쁨이 찾아온다”고 했다.
최 목사는 “기쁨의 열매를 맺는 인생의 비결은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하는 친밀한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뤄진다고 주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이것은 학벌, 지능, 스펙과 상관없는 것이다. 때로는 이성과 스펙이 말씀을 거부하는데 작용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성경, 율법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하나님에게서 떠나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에 열매가 없었다”며 “무화과나무의 저주가 우리에게 주는 세 번째 교훈은 우리의 기도와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것을 봤지만, 나무의 죽음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에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가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어 “제자들은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눈앞에서 체험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해서 말라 죽은 것을 보고 놀랐으며 이상하게 여겼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호통을 치셨는데 그 사건에 연이어서 무화과나무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그 연관성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인이 있다. 모든 것을 다 그렇게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분명하게 내가 느끼는 반복적인 것이 있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인이 있다.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런 사인이 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앙이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응답을 받지만, 기도해놓고 그 응답을 우연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최 목사는 “이런 모습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반복되어왔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수백 년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께서 곧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인데 제자들의 상태는 불신앙과 무지를 넘나드는 위험한 상태였다. 주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보고도 주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며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는 의심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신다. 22절을 보면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기도하면서 의심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믿지 않으면서 하는 기도다. 내가 스스로 계속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열매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기도하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거나 맞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는 ‘기도 응답을 늘 허락하시는 것은 아니다. 기도가 효력을 발휘할 때 그 기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역사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가 남긴 명언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합당할 때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뤄주시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 다는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최 목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나는 어떤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가 점검하며 우리가 목표로 세운 그 열매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인지 아니면 상관이 없는 열매인지 돌아보길 바란다. 그 열매가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는 합당한 열매가 되고 나는 그 열매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하며 나아가길 바란다. 선하신 주님을 위해서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고 썩을 열매가 아니라 영원한 열매를 맺는 것을 목표로 삼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