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모든 식탁은 단순히 배를 불리는 곳이 아니라 구원을 경험하는 표적이다. 예수가 세리와 죄인과 함께 나눈 식탁은 이러한 표적의 연속선상에 있다. 예수는 ‘먹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늘 누군가와 먹으며 다녔다. 그런데 그의 식탁은 유별났다. 그는 죄인들과 밥을 먹었으며, 밥을 먹을 때 지켜야 하는 정결법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이 때문에 예수의 식탁은 늘 바리새인들의 도마에 올랐다. 그의 식탁은 더러웠기 때문이다. 표적을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은 예수를 보았지만,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은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것으로 기쁨을 삼았다. 반면에 표적을 보았던 사람들은 예수의 죽음에도 그를 따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고난의 길에서, 그들은 예수의 삶을 살려고 애썼을 것이다. 무슨 대단한 기적이나 놀라운 능력이 아니더라도 제자들의 일이 예수의 일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렇듯 먹이는 표적을 통해서다. 누구든지 올 수 있는 열린 식탁, 디베랴 호숫가의 식탁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는 따뜻한 식탁, 그 식탁을 통해서 제자들도 자라며 예수의 생명은 이어진다. 언제, 어디서든 그의 사람들을 따라 떠도시는 하나님과 함께 말이다.
김호경 – 예수의 식탁 이야기
나도 처음엔 이런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들었는데, 내가 앞으로 맨체스터에서 어학연수를 끝내고, 글래스고에서 프리마스터 과정(Pre-master’s course: 석사 전 과정)과 마지막으로 셰필드에서의 석·박사 통합과정을 하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라”(잠 16:9)라는 말씀을 뼈저리게 경험한 것 같다. 나는 형제자매들과 이런 소모임을 정말 오랜만에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어릴 때부터 대형교회를 다녔지만, 청년대학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중보기도 모임은 형제자매들이 모두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서로 기도해 주는 것이라서 그 기쁨과 감사가 크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한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이 타국에서 이렇게 좋은 경험과 신앙생활을 하게 하신 일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다. 내겐 하나님이 주신 체험이 있었다. 영어시험일인 9월 8일 아침에 시험장으로 가는데, 중국인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호와 자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 듣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언어로 이와 비슷한 발음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여호와 자비’라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음성과도 같았다. 그날 나는 ‘어느 정도 합격하겠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험에 임할 수 있었다.
김경헌 – 영국 유학 연수 간증
사도행전이 바울의 마지막 운명을 언급하지 않은 채 끝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큰 신학적 의제 속에 포함시키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또 다른 불쾌한 역사적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울의 말년에 대해 갖고 있는 유일한 자료는 2세기로 넘어갈 무렵 클레멘트가 로마에서 쓴 첫 번째 편지에 보존된 송덕문이다. “질투심과 갈등을 거쳐 바울은 인내의 상(the prize of endurance)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었다. 일곱 차례나 그는 감금되었고, 유배당했으며, 돌에 맞았지만, 동방과 서방 모두에서 전파자였으며, 믿음의 고귀한 명성을 얻었고, 온 세상에 의로움을 가르쳤으며, 그가 서방 끝에 도달했을 때 통치자들 앞에서 증언(martyresas), 곧 순교로 증언함으로써, 인내의 가장 위대한 본보기로 이 세상을 떠나 거룩한 장소로 들어갔다”(5:5-7).
리처드 호슬리 & 닐 애셔 실버만 – 메시지와 하나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