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선교 위한 ‘다리’인가 선교의 ‘목표’인가?

오피니언·칼럼
기고
  •   
로잔이 추구할 선교와 윤리의 바람직한 관계(上)
안승오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

선교적 사명과 윤리적 사명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두 가지 핵심의무 사항이다. 성도가 되었다면 당연히 아직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고, 동시에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윤리적 사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태동과 함께 이 두 가지 사명의 관계를 두고 많은 논의들이 진행되어져 왔고, 지금까지 취해진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는 전통적 입장으로 윤리적 과제를 선교를 위한 다리 또는 열매로 보는 입장이고, 둘째는 에큐메니칼 입장으로 윤리적 과제를 선교의 목표로 삼는 입장이고, 셋째는 통전적 입장으로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를 동등하게 보면서 선교의 개념에 포함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입장 중 에큐메니칼 진영은 두 번째 입장에서 세 번째 입장으로 선회한 경향을 보인 반면, 로잔을 비롯한 복음주의 진영은 첫 번째 관점에서 세 번째 관점으로 선회한 경향을 보인다. 과정은 이처럼 양 진영이 다른 경향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오늘날 에큐메니칼 진영이든 복음주의 진영이든 모두 선교와 윤리를 동등하게 보고, 윤리적 과제를 선교에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선교 개념을 보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기독교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이슈이므로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주제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입장들을 큰 틀에서 분석하면서 선교에 있어서 윤리의 과제를 어떻게 보는 것이 오늘의 선교에서 바람직한 관점인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특별히 4차 로잔대회를 앞둔 로잔운동이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관점을 지니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 장에서 사용되는 ‘선교’ 또는 ‘선교적 과제’ 라는 용어는 전통적인 협의의 개념으로 각각 복음전도를 목표로 하는 모든 선교 활동과 의무를 의미하며, ‘윤리’ 또는 ‘윤리적 과제’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윤리를 상정하며 각각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사는 삶, 그리고 세상의 구조적 변화와 생태계 보존 등을 위해 하는 일과 그 의무 등을 의미한다.

I. 선교와 윤리 중 어느 한편에 강조점을 두는 관점들

1. 윤리를 선교의 다리 또는 열매로 생각한 관점

전통적인 선교의 경우 대부분 윤리적 과제를 선교를 위한 하나의 다리 또는 열매로 생각한 경향이 강했다. 즉 선교의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영혼을 구하는 것이고 선교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선교에 유익하도록 윤리적 과제를 수행하거나, 선교의 결과로 윤리적 수준 향상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였다. 선교의 위대한 세기로 불리던 19세기의 선교는 대부분 이런 관점을 가지고 수행되었다. 예를 들어 한국에 대표적인 선교사 중 하나였던 사무엘 마펫(Samuel Moffet)은 “의료사역과 복음 전도 사역이 연합함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이 엄청납니다. 의료사역은 복음 전도 사역을 위한 수단이 되고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의료와 교육사역이 선교를 위한 다리가 되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였다.

또한 중국 내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역시 ‘복음화 = 서구문화화’의 원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대신 의술을 베푸는 것은 중대한 실수입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능력 대신에 교육을 위한 학교를 제공한다면 이 또한 중대한 실수입니다”라고 강조하였다. 즉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이지 단순히 사람들의 생활을 서구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전통적인 선교는 세상을 위한 가장 시급한 급선무는 바로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하는 일이라는 견해를 지녔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전통적인 선교에서는 세상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과제를 복음 전도로 보았다. 즉 다른 어떤 윤리적 과제 수행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윤리적 변화의 길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기독교가 들어간 많은 곳에 윤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예를 들면 한국의 경우 복음운동이 강하게 일어난 20세기 초에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가운데 축첩, 조혼, 노비제도, 술과 담배 등의 폐해를 고치면서 백성들의 수준이 윤리적으로 한층 높아졌다.

미국에서도 이런 변화들이 있었는데, 미국에서 성령에 의한 강한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에 (1857년 - 1859년) 복음의 강한 영향력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터에서 훨씬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로 변화되었고, 사회 곳곳에 쌓여 있는 악의 세력을 제거하는 일에 협력하여 사회를 개혁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즉 고아와 환자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나아가 노예 폐지 운동과 금주 운동 등에도 앞장섰다.

또한 많은 선교지에서 흉악한 악습들이 복음의 영향력으로 점차 폐기되었는데, 소아 결혼 (child marriage), 사티 관습(남편의 장례 화장 시에 과부를 따라 죽게 하는 제도), 성전간음, 천민 학대 등의 인도 폐습, 전족 (여자 아이들의 발을 자라지 못하도록 묶는 것), 아편 중독, 유아 포기 등의 중국 폐습, 일부다처제, 노예 매매, 쌍둥이 살해 등의 아프리카 폐습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나이지리아의 발레와(Balewa) 수상은 1960년 1월에 의회에서 행한 독립 발기문에서 “우리들은 우리 나라 독립에 많은 공을 세운 선교사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 선교부는 교육 방면에 현저한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만족할 수 있으며, 사실 이것을 아는 살아있는 증인들이 아직도 이 의원들 가운데 많다고 확신 합니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선교는 윤리의 열매로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

2. 윤리적 과제를 선교의 한 목표로 생각한 관점

이 관점은 앞에서 언급한 입장과 다른 쪽에 서있는 입장으로 윤리적 과제를 선교의 목표로 생각하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인 기독교 선교가 교회의 세력 확장에만 관심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가부장주의, 비관용, 오만함 등으로 점철되어, 문화 파괴, 사회구조 와해, 전통 종교 억압, 낯선 이방 교회 설립 등을 가져와 이 세계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교회가 교회를 키우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이 세계의 문제들에는 무관심하고, 이 세계의 불행이라고 생각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에는 게을렀던 점들을 깊이 반성하였다.

이와 같은 인식 속에서 선교의 목표는 더 이상 복음화가 아니라 세상을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로 바꿔지게 되었다. 이로써 선교의 목표는 단순히 세계 복음화가 아니라 ‘인간화,’ ‘JPIC," "화해와 일치,’ ‘보건 및 사회 복지 사업,’ ‘청소년 및 여성을 위한 사업,’ ‘폭력에 대한 건설적 대응,’ ‘인종차별에 대한 투쟁’ 등의 폭 넓은 목표를 지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윤리적 과제 수행을 선교의 우선적인 목표로 삼는 전통적인 에큐메니칼 선교의 특징은 이미 예루살렘 IMC 대회에서도 그 싹이 어느 정도 보이는데 예루살렘은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을 윤리의 개념이 아니라 선교의 개념에 포함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관점은 사이더가 ‘회심과 사회변혁의 관계’를 분석한 여러 관점 중 “구원이 사회정의인 까닭에 복음 전도는 정치이다” 는 관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하여 사이더는 “그리고 웁살라에서의 WCC 제 4차 총회(1968)를 위한 예비 성명서는 적어도 구원에 대한 이 세속적 이해에 위험스러울 정도로 근접했다: 우리는 인간화를 선교의 목표로서 고양하여 왔다. 복음전도는 정치이며 구원은 사회 정의이다.” 라고 분석하였다. 이종성도 윤리를 선교의 개념에 포함시키면서 윤리적 과제를 선교의 목표로 생각하는 에큐메니칼 선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에큐메니칼 선교관은 그러한 전통적 선교관의 차원을 넘어서 선교의 초점을 인류를 돕는다는 차원에 두게 되었다. 반드시 예수를 믿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교를 받는 대상이 인간으로서 누릴 인권과 사회적 지위와 생활권을 확보하여 사람답게(이것을 인간화라고 함)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선교의 목적이 있다고 한다.

동시에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는 세력이 정치와 경제와 군벌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의 불의를 행하지 못하도록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정의, 인권, 여성해방, 평화 등에 관한 운동계획을 수립하여 조직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동함으로 기성교회가 이룩하지 못한 많은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와 같이 현재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단순히 복음 확산과 교회 통합과 갱신을 위한 운동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연찰대상으로 채택하여 그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내려 신학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강력한 세계교회의 행동기관으로 발전되었다.” (계속)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Rethinking the Theology of WCC』, 『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 주제 28가지』, 『현대 선교학 개론』(공저), 『한 권으로 읽는 세계 선교 역사 100장면』, 『성장하는 이슬람 약화되는 기독교』, 『현대 선교신학』, 『현대 선교의 핵심 주제 8가지』, 『현대 선교의 프레임』, 『제4 선교신학』, 『성경이 말씀하는 선교』, 『현대 선교신학(개정판)』, 『현대 선교의 목표들』 등이 있다.

#안승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