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과학이 공히 보여 주듯 우리는 경외를 경험할수록 더 만족스럽게 인간다워진다. 인간은 경외를 원할 뿐 아니라 경외가 꼭 필요한 존재다. 경탄하도록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자아 숭배라는 오늘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이 세계적 종교가 많은 사람을 배신하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자아를 숭배하면 경외심을 잃고 공허해진다. 생각만큼 우리가 대단한 존재가 전혀 아니라서 그렇다. 우리는 현시대를 살고 있을까, 아니면 오는 시대를 살고 있을까? 이에 성경은 둘 다라고 답한다. 벤다이어그램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두 시대의 원이 서로 겹쳐지는 교집합 부분에서 살고 있다. 그 둘이 동시에 우리 마음을 얻고자 치열하게 싸우며, 무한한 우주적 규모의 전쟁에서 매 순간 맞붙는다. 날마다 하루에도 수만 번씩 우리는 어느 시대에 마음을 두고 어느 나라와 어느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할지를 선택한다. 우리의 왕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딤전 6:15)이신 예수님인가, 아니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가? 결국 자아를 숭배하라는 뱀의 거짓말도 당연히 패한다는 뜻이다.
사디어스 윌리엄스 –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
분명 그리스도인은 아닌데, 왜 굳이 교회에 다니는가? 교회는 어쩌다가 그런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었는가? 답은 분명합니다. ‘가치 있는 곳에 가짜들이 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자국에 무슨 간첩이 있겠습니까? 간첩은 적국에 보내는 법입니다. 많이 보낼수록 유리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교회의 본질을 허물어뜨리고자 하는 악한 의도를 지닌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래서 교회 안에 간첩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반(反)그리스도인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입으로 예수를 주라고 부르면서 믿음 없음을 드러내는 자입니까, 아니면 말없이 예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입니까?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리스도인입니까, 반그리스도인입니까? 예수님 당시 유대인 중에서 자신을 이방인과 동일시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유대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을 것입니다.
조정민 – 교회 속 반그리스도인
우리는 교회가 자기만의 울타리를 넘어 주변의 모든 사람, 나아가 피조세계까지 품을 수 있는 너른 품이 되는 꿈을 꿉니다. 그 비전의 출발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입니다.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에서 생명의 기운이 발산되는 것처럼, 잘 훈련되고 다듬어진 신앙인 한 사람에게서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인격적 치유력과 감화력이 피어오릅니다. 저는 한 사람이 개인적 차원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영글어 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네 가지를 꼽습니다. 바로 기도, 성경 읽기, 분별, 대화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훌룡한 그리스도인을 키워 낸 핵심 역량으로 손꼽히는 것들입니다. 앞으로도 이 네 가지는 사적인 신앙의 근간이면서 공적인 영역과 이어지는 줄기와 가지가 될 것입니다.
손성현 – 나를 넘어서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