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조선왕조실록 접근을 돕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국보 제151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구성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전 20권 시리즈가 완간됐다.
한겨레 신문에 만평을 연재한 박시백(49)씨가 역사 무지를 반성하며 시작한 작업이다. 작품 구상부터 완간까지 13년, 첫권 '개국'(2003) 이후 '망국'을 기록하는 데 걸린 세월만 10년이다. 실록 2077권을 121권의 노트로 요약해 4000장, 2만5000컷에 나눠 담았다.
박씨는 "망국의 과정을 담으면서 아프고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 답답하고 안쓰럽지만, 그 시절에도 의병운동이 일어나는 등 새로운 가능성이나 희망이 있었어요. '부끄러운 역사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죠"라고 말했다.
사실로 알고 있던 역사가 실록과 배치될 때마다 '실록을 제대로 알리자'는 사명감은 커졌다. 작품 제작 초기 '만화'에 찍었던 방점을 '역사'로 옮겨갔다. 정사 없는 야사가 얼마나 허망한지 느꼈기 때문이다.
"작품 초기 '조선왕조 정치사를 만화로 쉽게 옮기자'가 목표였다면, 후반에는 '실록의 내용을 제대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드라마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유명한 역사서에서도 실록이 아닌 야사를 따라 기술한 것을 많이 봤거든요"
세종 때를 가장 왜곡돼 알려진 시대로 봤다. "개인적으로 세종 시대와 관련해 대중적으로 나온 책 중 제대로 실록을 기반으로 쓰인 책을 보지 못했어요. 한글학자가 아니라서 한글의 제작과정을 잘 모르지만 실록 자체만 봤을 때는 '집현전에 의해 한글이 연구되고 만들어졌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가장 만화화하기 힘든 역사이기도 했다. "세종실록이 기록이 방대하고 전문적인 분야가 많아요. 음악 등은 제가 전혀 모르는데 당대의 용어로 나와 있거든요. 부지런히 인터넷과 관련 서적을 뒤졌죠."
같은 이유로 가장 애착이 가는 조선의 왕이다. "세종대왕은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는 느낌이에요. 왕가를 이어받은 사람인데 자질의 비범함이 대단해요. 국가대사를 구상하고 추진하는 능력이 뛰어나요. 동시에 민주적인 리더십에 대한 소양도 애당초 갖춰진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최근 논란이 된 남북정상회담대화록과 관련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당파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 들어가긴 해도 사실 자체는 빠지지 않고 기록한 점, 실록을 당대의 왕이 볼 수 없게 차단한 점 등 조선왕조의 기록물을 대하는 태도를 되새겨 볼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시백의 조성왕조실록'은 지금까지 70만 독자와 만났다. 출판사는 완간과 함께 판매부수 100만부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박씨는 29일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주제로 팟캐스트 방송에 나서는 등 조선왕조실록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활동을 이어간다.
출판사 휴머니스트 김학원(51) 대표는 "조선왕조실록이 만화라는 장르를 만나서 대중화된 첫 사례"라며 "조선왕조실록이 만화와 만나 이전과 다른 일들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소설,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의 장르에서 야사가 아닌 정사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확장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처럼 해외 역사 관련 출판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번역,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 20권, 4618쪽, 2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