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의 분쟁이 5개월을 넘어섰다.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12일(화) 보고서 ‘고립과 상처(Trapped and Scarred)’를 발표하고, 가자지구 아동의 정신건강 붕괴를 경고했다.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발발 이후로 팔레스타인 아동 1만 2,550명을 포함해 3만 717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아동 33명을 포함한 1,200명이 사망하고 240명이 포로가 됐다. 현재 가자지구에서는 깨끗한 물과 식량 부족으로 재난에 가까운 기아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가자지구 복지부에 따르면, 북부에서만 최소 15명의 아동이 영양실조와 탈수로 사망했다. 대부분의 의료 시설 운영이 중단되고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는 탓에 실제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세이브더칠드런 팔레스타인의 인도주의 활동가는 계속되는 분쟁으로 인한 폭력, 강제 이주, 굶주림, 질병과 이미 앞서 17년에 걸친 가자지구 봉쇄 정책으로 가자지구 아동과 가족이 심각한 불안과 스트레스 등의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경고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보고서 ‘고립과 상처’에 따르면, 가자지구 아동의 오랜 기간 누적된 정신적 스트레스는 위기 수준이며, 공포, 불안, 섭식장애, 야뇨증, 과잉 경계, 수면장애 등 트라우마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분리 불안이나 애착 관계 형성의 어려움으로 공격성을 보이거나 지나치게 위축되는 등 행동 변화를 보이는 경우도 보고됐다. 이번 연구는 지난 2022년 세이브더칠드런이 발표한 가자지구 아동 정신건강 연구를 보완해 발표됐으며, 2024년 1월 가자지구 내 부모 및 양육자 4명과 서안지구 아동 32명, 정신건강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가자지구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고 보고했다. 와심 씨는 “가자지구 아이들이 폭탄, 죽음, 시신 등 모든 것을 목격했다. 더 이상 아이들을 속일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 아들이 이제는 소리만 듣고도 어떤 종류의 폭발물이 떨어지는지 구분해 낼 수 있다”고 했다. 네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아말 씨는 “아이들이 기본적인 일들에 집중하기 어려워한다. 방금 일어난 일도 금방 잊어버리거나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가족이나 기쁜 일을 그리던 아이가 이제는 군인과 전쟁, 피를 그린다”고 했다.
이전부터 가자지구 아동은 주기적인 폭력 사태로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었다. 봉쇄 정책으로 경제가 붕괴하고, 필수적인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으며, 이동 역시 제한됐다. 특히 아동의 경우, 가족 및 친구와 분리된 것이 정신건강을 약화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어느 때보다도 정신건강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가자지구 내 공공 정신건강센터 6곳과 유일한 정신과 외래 병원이 문을 닫으며 가자지구 내 정신건강 서비스는 완전히 붕괴했다.
정신건강 및 아동보호 전문가들은 보고서를 통해 즉각적이고 항구적인 휴전과 안전하고 자유로운 인도주의적 지원을 시작으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며, 전쟁이 계속될 경우 회복의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며 평생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는 정신적 피해가 심화할 것이라 경고했다.
세이브더칠드런 팔레스타인 사무소장 제이슨 리는 “어떤 어린이도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겪도록 용납해선 안된다. 가자지구 아동은 이미 17년에 걸쳐 봉쇄와 지속적인 폭력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전쟁이 아동에게 남기는 신체적, 정신적 상처가 아이들의 회복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충분한 지원만 있다면 아직 아이들에게는 전쟁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남아있다. 하지만 즉각적인 휴전과 안전하고 자유로운 인도적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