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증원에 반대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과 사법절차를 본격화하면서 전공의의 빈자리를 메워온 교수들도 단체행동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선 교수들이 잇따라 사직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대학 측의 의대증원 신청에 반발해 삭발 투쟁에 나섰다.
배대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5일 페이스북에 “전공의, 전임의 선생님들의 면허를 정지한다고 하는 보건복지부의 발표와 현재 정원의 5.1배를 적어낸 모교 총장의 의견을 듣자니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과 같이 일할 수 없다면 제가 중증 고난도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더 남아 있을 이유는 없어 사직하고자 한다”면서 “동료들과 함께 진료를 이어나갈 수 없다면 동료들과 함께 다른 길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거도 없는 무분별한 2000명 증원은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가속화 할 것”이라면서 “필수의료 강화라고 하는 지원은 결국 밑 빠진 항아리에 물 좀 더 넣어주는 의미 없는 단기 정책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려면 더 많은 동료들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치료를 행해야 한다”며 “그러한 동료는 지금까지 같이 병원에서 부딪히며 일해온 인턴, 전공의, 전임의들”이라고 말했다.
강원대 의대 교수들은 이날 모교의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신청에 반발해 삭발을 감행했다. 강원대는 전날 교육부에 49명인 정원을 140명으로 늘리는 신청서를 냈다.
류세민 강원대 의과대학 학장(흉부외과 교수)과 유윤종 의학과장(이비인후과 교수) 등 교수들은 이날 오전 강원대 의과대학 앞에서 삭발식을 갖고 “의대 증원 신청에 대해 교수들이 77%가량 유보해야 된다고 결의해 총장에게 전달했지만 의대교수들의 뜻과 전혀 무관하게 교육부에 증원 신청을 했다”면서 “젊은 전공의나 휴학계를 낸 학생들에게 면목이 없다. 어떻게 뜻을 표할 방법이 없었다”고 밝혔다.
류 학장은 “지난해 11월 의대 희망 수요 조사에서 학장단은 2025년 입학정원 기준 100명을 제출했었고, 이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개별 교실의 교육역량의 실제적인 확인이나 피교육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 과장은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지만 꺾여버린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는다”면서 “필수의료 분야에서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교수들의 사직이 시작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앞서 외과 교수가 의대교수 중 처음으로 공개 사직 의사를 밝혔다.
윤우성 경북의대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지난 4일 SNS를 통해 “저는 외과 교수직을 그만둔다. 이미 오래 전 번아웃도 됐고, 더 힘만 빠진다”면서 “지금 의료문제에 대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정부는 여론몰이에만 몰두해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결론과 합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현실에 책임져야 할 정부, 기성세대 의사들인 우리가 욕 먹어야 할 것을 의사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전공의가 다 짊어지고 있다”면서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라고, 후배 의대생에게 외과 전공의 하라고 자신있게 말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마저 이탈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의료현장의 ‘최후의 보루’인 교수들 사이에서도 강경 대응 움직임이 일면서 입원·수술 축소 등 의료공백이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날 페이스북에 “복지부가 전공의들의 사직이 의료대란을 일으켰다며 면허정지나 취소가 가능한 행정 및 사법처리를 하겠다고 한다”면서 “전공의들이 돌아올 길을 막아 의료대란을 고착화시키겠다는 건지”라고 썼다.
이어 “물밑 대화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고,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피해가 본격화되면 교수 사회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분위기인 듯하다”면서 “합리적인 조정을 위한 대화라도 시작되어야 할 시기다. 큰 일 없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뉴시스